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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17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5 - 3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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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는 중종 12년(1517) 문묘에 종사되면서 도학의 조종(祖宗)으로서 위상을 공인받았다. 문묘종사 이후 16세기 전반에 걸쳐 사림은 정몽주의 위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강화하면서 조선 사회만의 도통론을 체계화하였다. 16세기에 정몽주는 절의를 중심으로 학문과 그에 수반된 실천들이 강조되며 도통의 조종으로 정립되었다. 또한 정몽주는 기자에서 시작되는 동방의 도통을 회복한 인물로서 상징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당대 사림들은 조선 사회의 도통을 확보하고 사림의 정치적․사회적 명분을 강화하였다. 16세기 정몽주에 대한 사림의 추숭은 문묘종사․서원건립․시문(詩文) 등의 기록물․출판활동 등을 통해 점차 확대되어 갔다. 특히 이러한 사업들은 16세기 후반 사림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선조대에 집중적으로 추진되었다. 17세기 초에는 5현이 문묘에 종사되면서 조선의 도통론은 국가 및 사회적으로 공인을 받게 되었다. 16세기의 도통론에 입각한 정몽주에 대한 위상은 단순히 그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정몽주에 대한 이해는 조선후기에도 통용되었다. 특히 17세기 심화된 성리학적 의리론과 함께 정몽주는 도통을 기반으로 화이론과 관련된 시대적 흐름의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는 17세기 정몽주에 대한 인식이 16세기를 계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처해진 현실에 따라 재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은 현재까지 정몽주가 절의 및 동방 도통의 조종(祖宗)으로 인식되는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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