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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일본근대학회 일본근대학연구 일본근대학연구 제6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73 - 39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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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 기법은 예로부터 중국에서 조선,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칠공예 기법 중 하나였다. 중국에서는 조금, 일본에서는 시회가 발달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나전칠기가 가장 보편적으로 발달하였다. 일본은 칠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칠 문화가 발달하였지만 나전칠기는 예외였다. 전통적인 조선의 공예 문화는 일본인의 필요에 따라 자주 왜곡되었다. 일본식 기술에 의해서 많은 변화와 왜곡을 감당하여야 했다. 그리고 그런 영향은 해방 이후까지 이어졌다. 우리 전통기법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일본식 기법도 변화를 맞이하여 독특한 통영지역의 나전칠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역사성에 대해서 검토하고 그 왜곡과 변화와 계승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없었다.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종교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 하였다. 종교적인 관찰로서 사진자료에 기반을 두고 문양의 상징성이나 형태, 제작기법, 시문기법 등 의장에 관한 설명으로 집중하여 구성되었다. 식민지시기 및 사회상황으로 이어지는 근대 통영지역 나전칠기산업의 실상과 제한적으로 다루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나전칠기의 근대적 궤적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식민지시기 통영나전칠기 산업이 공업전습소를 시작으로 조선총독부의 연결고리에 의한 형성과 은사수산 산업으로 이어지는 일본인들의 나전칠기 산업의 형성과정을 살피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 연구를 통하여 (1)전통적인 관주도에 의하여 통영지역 나전칠기 업은 성장해왔다. (2)이주 일본인의 상업 자본에 종속되어 갔다. (3)통치구조의 강화를 위한 수단의 회유성 정책 이었다. (4)나전칠기 연구회를 창립하고 통영칠공조합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였다. 이상과 같이 모든 쟁점은 일본인이 중심이 되었으며 해방이 될 때 까지 유지 되었다. 요컨대, 일본인 자본가들 눈에는 자신들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서 식민지시기 조선은 기회의 땅이 되었다. 조선에 개척지의 이권을 노리고 이주한 일본인들은 표면적으로는 국가를 강조하였다. 내면에는 자신의 이익을 늘리는데 모든 면에서 우선이 되었다. 개인 사업이 총독부라는 권력의 연결고리 아래서 국가적 사업이 포장되어 덧씌워져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식민사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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