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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37호
발행연도
2007.1
수록면
75 - 100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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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려의 승려 止와 조선의 승려 普雨의 和諍的 행적과 生態的인 문학세계를 함께 해명하기 위해서 작성되었다. 충지와 보우가 살았던 시대는 현저하게 달랐지만 그들이 남긴 행적과 문학이 화쟁적이고 생태적이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은 당대의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문화를 생태사상과 화쟁사상으로 통합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충지의 화쟁적인 행적과 시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서 몽고와 고려정부가 백성들을 징집하고 혹사시킬 때 고통받던 백성들의 심경을 대변해서 지은 反戰詩는 그의 화쟁적 삶과 문학을 대변한다. 충지는 백성들의 고통을 하느님께 호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은 시를 ‘피눈물로 쓴 노래[泣血詞]’라 명명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폭력적인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둘째, 자연을 노래한 시를 통해 조화와 어울림을 강조하였다. 이 점은 나와 타자가 둘이 아니라는 불교의 不二思想과 화엄사상이 그 배경사상이 된다. 보우의 화쟁적인 행적과 시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보우의 청년기는 절망적인 불교 배척기였다. 승려와 사찰은 사라져 할 사회의 악이었다. 이 때 보우는 승려들만 임금의 신하가 아니라고 좌절하면서도 폭력적인 정권과 적대적인 儒家세력을 불교적 忍辱과 자비로 감싸 안는 화쟁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明宗의 모후인 文定大妃의 도움으로 불교의 法燈을 살려냈던 보우는 유자들의 철저한 비난과 탄압 때문에 僧官을 버리고 淸平寺로 퇴거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쫓겨난 자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잊고 인연에 순응하는 낙천적인 수행자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행동은 그의 차원 높은 수행력과 세상사 모두를 인연으로 받아드리는 불교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폭력적인 권력과 전쟁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어울림과 조화를 중시한 충지의 행적과 사상은 극단적으로 분열되고 사상적으로 경직된 조선사회를 자비와 인욕으로 감내하며 인연에 따라 行藏을 실천했던 보우의 삶과 문학적 업적과 깊은 동질성을 가진다. 따라서 본고는 험한 세상을 자비와 인욕으로 포용하려 했던 두 승려의 삶과 문학이 각각 화쟁적이고 생태적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논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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