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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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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35호
발행연도
2006.1
수록면
213 - 24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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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후 세상에 나아갈 의가 없다던 초려는 효종의 밀지를 받고 북벌정책을 돕기 위해 조정에 나아갔다. 청음 김상헌신독재 김집우암 송시열동춘당 송준길 등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대지(大志)를 실행하려 했으나 낙당과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초려는 초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효종 말년 초려는 밀지를 받고 다시 나아갔지만 뜻을 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심부터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 초려는 전무후무한 4만여 자의 장문 기해봉사를 준비했다. 조선 사회 전체를 정치경제군사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개혁하고자 하는 방안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는 민심을 안정시키면서 국력을 신장시키는데 절실했던 사안들이었다. 현종은 15년간 조정 신료들과 이 소문(疏文)의 실행여부를 두고 검토하였지만 끝내 실천하지 못했다. 초려의 출처는 바로 이런 대지(大志)를 실행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었다. 조정에 나가서는 적극적으로 개혁을 실천하려 했고 향리로 물러나서는 세상과 단절하지 않고 세상을 걱정하고 순리에 응하는 낙천(樂天)을 겸하는 처세(處世)를 견지했다. 세상에 저촉되지 않고 시의(時宜)에 입각하여 출처를 결정했기 때문에 공업(功業)의 성패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 풍토 속에서 공맹의 뜻을 본받고 패도가 아닌 인의도덕에 입각하여 산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려 한 초려의 자세는 후인의 귀감이 될만 하다. 이는 한국사상사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대목이며 대단히 의미 있는 사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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