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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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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28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199 - 224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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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諰(1604-1672)는 17세기 한국의 예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7세기 한국 예학에 관한 평가는 김장생(1548-1631)과 그 문하의 예학, 그리고 정구(1543-1620)와 그 문하의 예학으로 크게 양분하여 두 계열로 나뉘어 발전하였다고 보고 있다. 17세기 자의대비 복제 문제에 있어서 김장생과 김집의 예학을 계승한 송준길(1606-1672)과 송시열(1607-1689)은 기년복을 주장하고 정구의 예학을 계승한 허목(1595-1682)은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예학의 두 흐름 가운데 박지계와 권시의 예학은 이와는 별개의 一派를 형성하고 있었다. 권시는 박지계의 주장에 동조하여 인조의 정원군에 대한 稱考를 허용하고 정원군을 太廟에 入廟할 것과 자의대비 복제 문제에 대해서 송시열과 송준길의 기년복 주장에 반대하여 참최복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권시의 예론은 孝親과 人情을 중시한 데에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血統에 의거한 왕위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논리를 제시하여, 군주의 입장을 옹호하는 예론을 제공하게 되었다. 한편 윤선도의 상소 이전까지의 복제논쟁은 정치적 대결 구도를 형성할 만큼 사림간의 갈등구조를 일으킨 것이 아니었고, 건전한 사림정치의 과정이었다. 예논쟁은 합리적인 논리에 의거한 사림간의 정당한 공론의 장이었다. 권시는 윤선도의 상소로 인해 복제문제가 정치문제로 비화하자 사림들간의 참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였다. 立論의 소재를 떠나 자기의 소견을 주장하는 선비를 아끼고 言路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公論정신을 강조하면서, 사림정치의 참뜻을 현실화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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