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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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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80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83 - 21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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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문(成三問, 1418∼1456)은 조선 선비의 상징이다. 성삼문은 박팽년 등 사육신과 함께 1456년(세조 2년) ‘대역죄인’(大逆罪人)으로 처형 당했으며 오랫동안 그들의 행적과 평가는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되지 않았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은 세조 당대는 물론 그 후로도 200여년간 공식적으로 역적(逆賊)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를수록 매시대 마다 한국 선비들은 그들을 칭송하고 현창(顯彰)하는 노력을 지속하였다. 결국 그들은 복권(復權)되고 한국의 절의(節義)를 대표하는 한국 선비의 전형으로서 추숭되었다. 중종반정 후 사림파가 등장하여 사육신의 절의를 공식적으로 재평가했다. 그 후 선비들 뿐만 아니라 조정(朝廷)에서 공식적으로 이들을 대표적인 충신으로 받들었다. 또한 충절과 의리를 한층 강화한 조선 후기에 비로소 그들의 충절이 국가적인 공인을 받게 되었다. 성삼문ㆍ박팽년 등 사육신은 희생당한지 2백여년이 지난 뒤인 숙종(肅宗) 때인 1691년(숙종 17)에 비로소 복권(復權)되어 신원(伸寃)되었다. 성삼문ㆍ박팽년 등은 영조(英祖) 때인 1758년(영조 34)에 이조 판서로 추증되었으며, 정조(正祖) 때인 1791년(정조 15)에는 단종충신어정배식록(端宗忠臣御定配食錄)에 올랐다. 이러한 복권과 현창 과정은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서 많은 선비들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진 일이며, 이러한 과정은 한국의 정신사를 수립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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