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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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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94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35 - 15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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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 1517~1578)의 행적 중에서, 현재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걸인청(乞人廳)’의 존재와 제도의 실행 여부를 실제 이지함의 관련 자료와 이야기(설화)를 통해서 재검토해 본 것이다. 국문학계에서 다루어진 이지함은 대부분 ‘기인(奇人)이라는 시각’에서 그의 행적이나 이야기의 반영된 민중의 심리, 이야기의 생성 원리였다. 그 이유는 조선후기에 산출된 각종 야담집(野談集)과 기인열전(奇人列傳)에서 그를 기인으로 형상화 했거나 그의 기인으로서의 행위에 초점을 둔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지함의 관련 기록과 이야기(설화) 중에는 그가 포천현감과 아산현감으로 재직했을 당시에 백성들을 사랑하는 목민관(牧民官)의 모습이나 걸인청과 유사한 빈민 구제시설 운영에 대한 것도 있다. 조선시대 공식 역사서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시작으로,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이관명(李觀命)의 『병산집(屛山集)』,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서 기관이나 시설을 만든 토정 이지함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토정 이지함을 양반 사대부의 일원으로서, 무엇보다 관인(官人)이었던 그의 업적을 기록하고자 쓴 것이다. 따라서 토정 이지함이 백성들을 위해 설치한 빈민 구제 시설과 제도의 시행은 역사상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걸인청’이라는 명칭은 관련 기록과 이야기(설화) 속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 명칭은 1992년도에 간행된 이재운의 『토정비결』이라는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걸인청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당연한 역사 용어가 되었다. 따라서 걸인청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여러모로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이제부터라도 실제 기록과 소설에서 만들어 낸 명칭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으로 조선시대 백성들을 구휼했던 기관의 공식 명칭을 사용하거나 역사적으로 고증된 합당한 새로운 명칭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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