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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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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42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91 - 12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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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은 국가 再造에 즈음하여 심성의리론을 행동철학인 예학으로 전환시켜 名分을 바르고 義理를 밝혔다. 우암의 尊華攘夷의 春秋大一統 사상은 민족의 자존과 국가의 자주의식을 앙양하여 儒敎禮俗이 지배하는 유교 문화권의 一統을 통해 平天下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그의 修養論인 直은 人道인 敬과 天道인 誠을 연계시키는 고리로 곧 克己復禮요, 天人合一이니, 퇴계의 敬의 사상 및 율곡의 誠의 사상과 결합하여 실천예학의 중심이 되었다. 이로써 우암이 정명론과 의리를 밝히는데 바탕한 강상윤리의 사회화와 直字眞訣을 통한 자기완성의 수양론은 시공을 초월해 불멸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암의 예학사상은 大一統 사상과 正名論, 典據 중심 사상이 일관되어 있다. 행례에 있어서는 時宜와 합리성을 존중하였으며 國恤시에는 관행되어 온 以月易日祭의 단상을 반대하고 天下通常인 삼년상을 주장하였으며 군신간에 同腹을 주장하였다. 전례문제는 정명논쟁으로 그 이전의 理氣四七문제와 이후의 湖洛人物性同異의 문제와 더불어 같은 맥락의 철학적인 논쟁으로 당쟁을 위한 것은 아니다. 우암은 국정의 자문을 받고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대의명분을 밝혀 의리를 보편화하고자 일생동안 노력하였다. 이 같은 사명 수행을 위하여 그가 건백한 것은 거의 의리를 밝히기 위한 예론으로써 북벌론을 비롯하여 효종 世室문제, 太廟 世室문제, 신덕왕후 廟와 정릉 복구문제, 태조에 대한 시호 推崇문제, 세자 책봉 문제 등이었다. 그러나 우암은 世道를 위하여 曾朱壁立의 기상으로 闢異端에 진취하여 생사화복을 초월한 衛道정신을 발휘하다가 83세로 後命을 받아 끝을 맺고 말았다. 우암이 표방한 춘추대의는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人慾存天理를 통한 의리의 발양으로 尊主愛民과 이론적인 국제 질서하에서 문명사회를 이룩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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