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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15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35 - 173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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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은 철갑선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전 세계 해양강국은 거대한 군함과 무거운 대포를 경쟁적으로 만들었다. 청조는 이홍장의 추천으로 이봉포를 주독공사로 임명하여 독일에서 철갑선을 구매하도록 했다. 동시에 기술전문가인 서건인을 2등 참찬의 신분으로 파견해 이봉포가 철갑선을 구매하는 것을 도와주도록 했다.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철갑선 구매는 이홍장의 북양해군 건설에서 정점을 찍은 해방(海防)사업이었다. 이봉포 공사시절(1878-1884) 불칸조선소와 정식으로 철갑선 정원과 진원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이번 사업은 하트와 캠벨이 청조를 대신해 군함을 구매하던 사명이 끝났음을 상징하였다. 그 후 청조는 외국인을 통해 군함을 구입하지 않았고, 중국외교관과 해군전문가가 국제무기시장에서 자신들의 요구에 맞추어 구매하였다. 이런 변화는 일단 중국인의 해군지식이 심화되었고 나아가 해양인식이 확대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원과 진원의 출현은 청 해군이 동북아시아의 해군강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중국군사기술이 독일식 모델을 받아들이는 표지였다. 영국이 최고의 해군강국이었지만, 광서 연간에 중국이 독일에서 구매한 군함은 영국에서 구매한 군함보다 훨씬 많았다. 통계를 보면 1876년부터 1894년 청일전쟁 직전까지 청조가 외국으로부터 구매한 함정 30여척 가운데 독일제 군함은 전체 3분의 2를 차지하였다. 영국이 중국에 대해 군함수출 제한정책을 펴자 이 기회를 빌어 독일은 주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군함을 수주한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대중국 우호정책의 결과였다. 육군을 보더라도 독일제 크루프대포와 모제소총 등 다양한 무기들이 청군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크루프공사에서 생산한 강철은 품질이 뛰어나 각국이 대포를 제조할 때 즐겨 사용했으며 중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크루프 대포는 단순히 육군에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해군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철갑선 정원과 진원과 순양함 제원의 주포와 부포는 예외 없이 크루프 대포를 장착하였다. 중국병선에 설치한 것은 물론 해안포대 등에도 크루프 대포가 다수를 차지하였다. 1871년부터 1880년까지 중국은 모두 764문의 크루프 대포를 구매했다는 통계가 있다. 허경징 공사시절(1884-1887)에도 군비구매와 관련한 일이 많았는데, 독일과의 우호적인 관계 속에서 많은 무기를 구입하였다. 청프전쟁의 영향으로 늦춰진 철갑선 정원과 진원, 순양함 제원 등 세 척의 군함을 검사한 후 서둘러 중국에 보냈다. 곧이어 순양함 경원 내원을 직접 구매하는데 주독공사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그 과정에서 무기전문가로 변신하였다. 중국해군은 독일의 군함기술, 화포기술, 어뢰기술 등을 받아들였고, 독일식 군사학당을 건립하고 독일에 유학한 군사인재들이 귀국해 해군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런데 중국이 불칸조선소에서 군함을 구매한 것은 기술이 탁월하거나 가격이 저렴해서만은 아니었다. 철갑선 정원과 진원호의 경우 독일의 독자적인 모델이 아니었으며, 순양함 제원은 독일이 처음 건조한 방호순양함이었다. 경원과 내원 역시 독일이 처음 건조한 장갑순양함이었다. 이처럼 실험적인 군함을 구매한 배경에는 독일에 대한 호감과 구매경로를 바꾸려는 의지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였다. 기존연구는 청말 군함구매와 해군건설에서 중국해방주권의 관점에 서서 하트와 캠벨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상대적으로 이봉포와 허경징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데, 앞으로 역사사실에 근거해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친영파인 곽숭도 증기택과 친독파인 이홍장 이봉포 간 평가문제도 마찬가지인데, 청조 내 권력투쟁의 맥락에서 살펴볼 여지가 없지 않다. 주독공사 이봉포나 허경징이 모두 뛰어난 인재였으며 독일에서 군사무기를 구매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한 점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외국기업과 대등한 관계에서 첨단 기술이전 등의 예민한 사안을 풀기에는 충분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크루프공사와 불칸조선소도 영국 군수기업처럼 예민한 군사기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정보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중국외교관들은 기계를 구매하거나 이를 조작할 수 있는 기술자를 배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은 감지했으나, 여전히 기술 확보보다는 무기구매를 중시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봉포와 서건인의 군함구매사업 과정 중에 충분한 기술 숙달이나 뛰어난 인재 양성에 소홀히 한 사실 등에서 청말 해군건설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들은 중국해군의 근대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청일해전에서 북양함대가 몰락하면서 오랜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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