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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95 - 12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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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상방의 표호가 짧은 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 원인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은 것은 산서상인들의 상업 무역망이 명청시기부터 완비되어 있었다는 점과 이를 기반으로 한 신용이 무엇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믿을 수 있는 금융기관이라고 인식되었던 점을 들고 있다. 가장 일찍 세워졌던 일승창 표호는 본점 平遙, 북경과 상해, 양자강 중하류 등지의 지점이 중심적인 활동을 하면서 평요현의 다른 표호와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고객을 위한 송금서비스를 수행해 갔다. 각 지점에서는 산서성 평요 본점 및 북경, 상해와 상호관계를 유지하며 전국적인 송금 네트워크에 참가하면서도 지점이 속한 각 지역에서 거래를 기본적인 관계로 하여, 대부의 이자나 수수료의 수입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영업을 유지해 갈 수 있었다. 지역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북경과 같은 대도시는 이자수입이 많았고, 그 외 광동쪽은 수수료의 수입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에서, 당시인들의 송금업자 표호에 대한 신용, 신뢰의 정도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용은 사회가 어지러운 시기에는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예컨대 1914년 일승창 표호도 자금회수가 여의롭지 못한 상황에서 북경경리가 자취를 감추자 본점에서는 “영업 중지”를 각 지점에 알리게 되고, 杭州와 상해 등의 지점에서는 “본점 결정에 의한 영업중단이 어쩔 수 없는 형편”임을 강조하면서 파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일승창 표호는 도산과 함께 소송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 처리과정에서 고동 李家는 전재산을 정리하여 이들의 예금을 돌려주는 성의를 보였다. 당시 중국기업에 적용되던 무한책임제에 근거한 채권자에 대한 배상의 도리였지만, 일반적으로 금융업에서 고객에 대한 신용을 표호업에서 강조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표호의 가장 큰 특징은 대출시에도 담보를 받지 않고 신용에 근거하여 대출을 해주는 점이었다. 표호는 신용이 강조된 금용기구였기 때문에 도산시에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구도였다. 시장전체가 흔들리는 공황, 국가존폐의 위기가 지나면 적은 자본으로도 쉽게 재기가 가능한 말단 금융기관이었다. 하지만 표호 경우 위에서 보는 다양한 지연 관계의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거대한 금융집단이었다. 상업적 유동성에 바탕을 하면서도 이 유동성에 기생하는 왕조 말기 국가와의 관계 및 고객을 우선시하는 신용관념은 국가붕괴에 따라 정치적 신용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손실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막대한 것이었다. 이를 간파한 이굉령은 일찍이 은행으로 개조를 요구하였지만 번번히 거절되는 상황을 뒤로하면서 표호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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