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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중국학회 중국학보 중국학보 제8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25 - 14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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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와 활발해진 西周 金文 자료의 발굴과 연구는 전래 문헌에 기반한 西周史 연구에 새로운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그중 周王의 冊命을 기록한 금문은 관제사 연구의 중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서주이래 三公의 일인으로 최고위관인 司徒(𤔲土)는 토지・농경과 인민 교화를 관장하는 民政官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인식의 기본적인 근거는 儒家 經典인 『周禮』였다. 서주 금문 자료를 분석해보면 이러한 인식에 일대 수정을 요구한다. 本稿에서는 서주 사도를 중심으로 그 본래 성격을 살펴보았다. 司徒가 토지와 농경을 관장한다는 근거로 제시되는 금문에는 사도뿐만이 아니라 司馬, 內史 등 다양한 관직들이 등장한다. 이는 토지와 농경이 사도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직무는 아님을 말해준다. 오히려 사도가 六師와 八師 같은 군사조직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은 그 본질적인 성격이 군사적인 데에 있음을 반영한다. 사도의 藉田 관리 역시 농경 그 자체가 아니라 이에 수반되는 軍事儀禮적인 것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주춘추시기의 문헌 자료와 금문 자료들을 살펴보면 사도의 從軍 기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도의 山林川澤 관리 직무도 농업을 보조하는 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도가 등장하는 금문 자료들을 시기에 따라 일별해보면 서주 중기를 기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전시기의 자료들이 보다 군사적인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반해 후기에 접근할수록 직무가 점차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周禮』에 기술한 민정관으로서의 사도는 후기의 변화된 이미지에 맞추어 묘사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춘추시기의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주 사도가 가지고 있었던 군사관으로서의 성격이 대체된 것이 아니라 이를 유지하면서 민정관적 요소를 흡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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