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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영옥 (동아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0집
발행연도
2019.3
수록면
73 - 112 (40page)
DOI
10.52271/PKHS.2019.03.1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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星山廣平李氏 海槎 李侃(1535~1612)은 임란 초기부터 倡義하여 宣武원종 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또 1596년 충청도에서 발발한 李夢鶴의 난을 진압하는 데도 참여하여 淸難원종공신 1등에 책봉되었다.
해사의 官歷은 임란 도중 충청어사의 中軍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어, 1612년 경상좌병사에 올라 그해 병영에서 卒할 때까지 계속되는데, 약 20년의 관직생활 동안 탄핵받고 파직되는 굴곡도 겪었지만, 외적을 방어하는 능력만큼은 높이 평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해사의 抗賊 활동은 크게 임란 발발 이후의 抗倭활동,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討賊활동, 북방의 賊胡를 격퇴한 退賊활동으로 구분되는데, 그 중 해사의 忠義와 武勇이 가장 잘 드러난 순간은 1600년 함경도 부령부사로서 관할 구역을 침략한 賊胡를 격퇴한 전투였다. 이 싸움에서 해사는 10여 군데 상처를 입고 휘하 장수들도 다수 전사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힘껏 싸워 결국 적호를 패주시켰다.
해사의 임란 의병활동은 그 구체적 활약상을 알기 어렵고, 이몽학의 난을 토벌할 때는 반란군과 직접 교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북쪽 변경을 쳐들어온 적호를 퇴치한 사실은 史冊에 엄연할 뿐 아니라 매우 극적이어서, 최소한 부령 지역에서는 전설이 되어 오래도록 전승되었다. 따라서 특히 북방 오랑캐를 물리친 일은 해사의 抗賊 활동 중 가장 현저한 업적이라고 할 만하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이간의 家系와 年譜
Ⅲ. 선조조 抗賊 활동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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