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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지희 (서울역사박물관)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74호
발행연도
2019.2
수록면
33 - 80 (48page)
DOI
10.17647/jss.2019.02.7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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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로에는 면포와 은을 취급하던 綿布廛, 白木廛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信行商會, 和信商會 등 약 50개소 이상의 은세공상회가 번성하였다. 현재도 종로는 귀금속도매상가와 귀금속제조업체가 밀집되어 있어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은공예품의 제작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상공업공간이라는 공간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종로 은세공상회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조선시대 시전에서 시작된 종로 은세공상회와 일제강점기 은세공상회의 역사적 관계를 밝히고, 그 배경이 종로의 장소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일제강점기 상공자료와 신문기사를 통해 종로라고 인식되는 인지적 범위의 은세공상회를 찾아내고, 지적도와 지적목록과 비교분석을 통해 위치와 분포를 추적하였다. 그 결과 조선시대 은을 취급하였던 백목전과 은방이 밀집해 있던 종로 2정목과 남대문통1정목 주변에 약 50여 개소의 은세공상회가 집중분포 했으며, 조선시대 시전을 기반으로 한 장소성이 일제강점기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규명하였다. 이러한 장소의 연속성이 현재 종로2가의 귀금속전문도매상가와 제조업체의 분포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조선시대 장소적 입지성과 역사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연속성은 은세공업이라는 특화된 산업생태계에서 종로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일제강점기에 종로 은세공업이 절정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시전과 은방이라는 역사적 장소 기반에서 비롯된 기술력과 인적 자원, 제작과 판매가 동시에 일어나는 안정적 산업생태계, 일제강점기 증가한 대중적 인기와 구매층의 등장으로 파악하였다. 즉 경공장에 속해 있던 은장의 내력과 은을 다루었던 은방도가의 존재는 종로의 은세공업이 발달할 수 있는 근원적 원동력이 되었고, 은공예품을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는 산업형태와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은공예품을 취급하는 종로 일대의 포목상과 시계상 등이 1차 소비자로 생성되어 안정적인 발달을 가져왔다. 또 종로에서 제작된 은공예품은 부국강병을 위한 근대적 실천과제로 받아들여진 공예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 아래 문화적 욕망으로 소비되었고, 철도관광 발달에 따른 관광기념품의 수요와 함께 경성의 특산품이 되었다. 그러므로 종로의 은세공업은 본정과 견주어도 우위를 점한 종로와 조선 산업생태계의 대표성을 획득하였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종로의 은세공업은 산업현장에 기여하는 미술문화로 정착되었고, 은공예품의 유행은 국가적 통제에서 벗어나 예술성과 대중성이 체화되기 시작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현재 종로에는 일제강점기에 은세공업보다 번성했던 포목상은 1990년대를 전후로 사라졌다. 그러나 은세공상회와 판매상가는 여전히 종로에 남아 전국 생산과 유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생산과 제작이라는 산업적 특징과 명맥을 계승하고 있는 은세공상회는 종로의 역사적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일제강점기 종로의 은세공상회 현황
Ⅲ. 일제강점기 은세공상회를 통해 본 종로의 공간성과 형성배경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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