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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지원 (啓明大學校)
저널정보
동아인문학회 동아인문학 東亞人文學 第45輯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313 - 339 (27page)
DOI
10.52639/JEAH.2018.12.4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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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성리학의 이론적 심화과정과 사림파의 도학운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박영(朴英, 1471~1540)의 위상은 결코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다. 이 연구는 16세기 박영과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던 송당학파의 도학운동에 대한 사상적 연원을 탐색하고, 이들이 지향했던 도학정신이 지닌 학문적 특성을 구명하는 데 중요한 목적이 있다.
송당학파의 도학운동은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단절된 도학의 맥을 계승하면서 이후 도통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특히 도학 본연의 전통을 가장 충실하게 지켜 실천 철학적 태도를 고수하였고, 학문적으로도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근본을 정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경전으로서 ≪대학≫의 위상을 강화하고 경전을 통해 학문적인 소득을 얻은 다음 존심(存心)·양성(養性)의 길에 들어서야 성취가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송당학파는 1572년 금오서원을 건립하여 길재의 도통에 박영을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의 도통의식을 명확하게 하였고, 선조의 사액(賜額)을 받음으로써 이를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16세기 후반까지 송당학파의 본거지로서 인식되었던 선산은 이후 장현광(張顯光, 1554~1637)의 학문적 영향력이 강하게 미치면서 점차 여헌학파(旅軒學派)로 흡수되어갔다. 하지만 이들은 송당학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상적 연원의식을 공고히 하면서 여헌학이 송당학을 계승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금오서원에 장현광을 배향함으로써 이런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는 말
Ⅱ. 도학운동의 배경과 전개
Ⅲ. 박영의 도학사상
Ⅳ. 박영 이후 송당학파의 도학사상
Ⅴ. 송당학파 도학사상의 특성과 한계
Ⅵ. 나오는 말-송당학파의 위상과 평가
【參考文獻】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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