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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두산 (성공회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현대문학회 한국현대문학연구 한국현대문학연구 제55집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5 - 3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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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0년대 극장에 전속된 여성 전통예인(‘극장기생’)의 존재양상을 광무대·단성사에서 활동하였던 김채란의 예술활동을 중심으로 분석한 글이다. 이는 한국 근대연극사 연구에서 신파극과 신극의 ‘여배우’ 등장에 주목하였던 흐름에서 비껴나, ‘기생’으로 대표되는 근대 여성연행자의 역사를 조망하려는 연구이다. 통감부 설치 이후 기생의 신분은 관기 축소, 식민지배 정책에 의해 위상이 추락하는 과정을 겪었고, 협률사 이후 조선인 대중극장에서는 관기와 삼패 이하 여성 연행자 집단이 두루 공연하면서 극장의 인기 예술인으로 부상하였다. 이에 따라 극장에서는 삼패, 지방기 출신의 극장기생을 고용하여 전통적 기생풍류에서 취급하지 않았던 판소리 등의 예제를 선보인다. 극장기생들은 ‘창기’와 구분되는 복식 등을 희망하면서 구분짓기의 전략을 보였는데, 이는 극장자본의 이해관계와 일치하는 것이기도 했다.
1912년부터 1915년까지 광무대·단성사의 전속으로 활동하였던 극장기생 김채란은 서울의 삼패 출신으로 추정되며, 경상도에서 활동하던 중 광무대 전속으로 서울의 극장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912~1913년 『매일신보』에 소설과 가요를 발표하였으며, 작창 능력을 지닌 예인이기도 했다. 본고에서는 관련 자료를 분석하며 기생-여성의 이중적 자의식과 그가 공연·창작한 〈춘향가〉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단성사 전속 이후 김채란의 연행 레퍼토리는 점차 다양화되며, 창극배우로까지 진출하였다. 이는 연인 함동섭과의 후원관계와 연관되어 있었다. 김채란의 삶과 예술은 창극 여배우로 성장하는 1910년대 여성 연행자의 학습과 성장 과정, 1910년대 기생에서 ‘여배우’로 이어지는 역사적 계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음미될 필요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근대 기생제도의 변천과 여성연행자의 사회적 환경 : ‘극장 기생’의 출현
3. 기생에서 ‘여배우’로 : 극장기생 김채란의 공연활동과 내면의식
4. 결론
〈참고문헌〉
영문초록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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