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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창혁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2호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219 - 248 (30page)
DOI
10.21490/jskh.2018.08.7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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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역사학의 성립 이래 부여 · 고구려 · 발해 등 만주 · 한반도 지역의 고대사는 20세기 초 중국 · 조선 등 주변국에 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궤적을 같이했던 滿鮮史의 주된 연구 대상이었다. 그 중 부여사의 경우 滿鮮史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고구려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으나, 1930년대 만주국의 성립을 계기로 ‘만주 민족’에 의한 ‘만주사’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면서 일련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이 같은 滿鮮史로서의 부여사 연구는 주로 중심지 및 강역과 같은 역사지리 관련 문제와 건국신화 및 종족기원과 같은 민족 관련 문제에 집중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헌자료들에 대한 극히 상세한 고증이 이루어지면서 후대 해당 분야에 대한 근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방법론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滿鮮史의 사상적 기반에는 근대 일본의 역사적 · 사회적 배경에서 형성된 일종의 하위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하였다. 따라서 그 같은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滿鮮史의 부여사 연구 역시, 한국사와의 연관관계 및 주체성 부정 및 그에 따른 문헌자료에 대한 편향적이고 자의적인 취사선택, ‘퉁구스계’라는 인종주의에 가까운 애매모호한 종족 개념의 설정, 남북 사이의 이원적 인식에 따른 지나친 지리결정론 등의 여러 문제점이 파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滿鮮史의 부여사에 대한 인식상의 문제점들은, 일제 패망 이후 戰後시기에 들어 이루어진 연구들에서도 비판 · 극복의 대상임과 동시에 여전히 일정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滿鮮史란,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20세기 초의 상황 속에서 이면의 아시아 멸시적 하위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비뚤어진 인식을 표면의 강고한 합리적 · 실증적 방법론으로서 뒷받침하면서 형성된 것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비록 戰後에 이르러 滿鮮史 자체는 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증적 방법론을 매개로 한 패러다임은 별다른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으며, 그 과정에서 이면에 잔존해 있던 오리엔탈리즘에 가까운 인식 역시 비록 본래 의도한 것은 아니었어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실증주의란 하나의 방법론일 뿐 그 자체가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 잔존해 있는 근대의 유산을 직시하면서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할 것인지는 추후의 과제라고 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戰前 滿鮮史의 부여사 인식
3. 戰後 일본 학계의 부여사 인식과 滿鮮史의 殘影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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