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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태영 (동서대학교)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53집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181 - 209 (29page)
DOI
10.17857/hw.2018.06.5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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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초기 천주교회에서 가장 큰 위기는 진산사건이었다. 초기의 교회를 주도했던 양반들이 대거 떠남으로써 교회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신앙이 계속된 것은 중인 지도층의 활동이었다. 이들은 당국의 엄한 감시 속에서도 열성을 다하여, 조직적으로 신앙 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 교회신도수가 오히려 늘어난 놀라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 같은 사실들은 천주교 교리가 가지는 그 자체의 매력도 있었지만 중인 지도층의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생활과 전도에 따른 것이었다.
중인 지도층의 주요 교회 활동으로는 첫째, ‘신앙 터전’의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자신의 집 또는 세를 내어 신앙집회의 장소로 제공하기도 했고, 약국을 운영하여 전도와 첨례의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둘째, 진산사건 이후 2차 성직자 영입을 주도하여 주문모 신부를 입국케 하였다.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여 사목활동을 함으로써 한국교회는 신부를 정점으로 하는 정식 교회 조직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셋째, 주문모 신부의 사목상 필요에 의한 여러 명의 회장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에 중인 지도층의 인물들이 각종 회장 직분을 수행하여 교회 조직을 굳건히 하고 전도에 앞장섰다. 넷째, 계층 간 가교 역할을 하였다. 초기 교회의 신도들은 다른 신분계층과 교류하지 못했으나 중인 지도층이 선구가 되어 모든 신분의 교인들과 교류하고 소통하였다. 봉건적 계층사회에서 신분을 뛰어넘는 교류는 교회조직을 굳건하게 했고 외교인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켜 교세 확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조선 후기 중인의 성격
Ⅱ. 신앙 터전의 ‘장소’ 제공
Ⅲ. 적극적인 교회 활동과 교세확장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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