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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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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90호
발행연도
2018.6
수록면
161 - 193 (33page)
DOI
10.37331/JKAH.2018.06.9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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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640년 처음으로 왕족자제를 당 국학에 입학시켰다. 도당유학생은 나당전쟁기 이후 한동안 파견되지 않다가 성덕왕대에 재개되었다. 8세기 말에는 도당유학생 출신이 귀국 후에 지방관인 縣 小守에 임명되지만, 문적 출신과 비교하여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 도당유학은 821년 김운경의 빈공과 급제 이후 본격적으로 성행하여, 837년에는 그 수가 216명에 달하였다. 양적 증가와 함께 질적 향상도 나타나는데, 빈공과에 급제하여 당 관직에 진출하거나 귀국 후 신라의 중앙·지방관에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이러한 9세기 신라의 도당유학 성행은 도당유학생이 감소하는 국제적인 추세에 반하는 것이었다. 신라의 도당유학생은 안사의 난 이후 당의 유학생 지원 악화 속에서도 학생의 자비 부담 및 재당 신라인들의 지원으로 유학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아울러 빈공과 급제 및 관직 제수로 양국에서 그 위상이 제고되었으며, 숙위를 대신하여 숙위학생의 파견이 늘어났다. 인재 양성을 위하여 국내에 국학과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였으나, 진골귀족의 증가와 국내 정세의 불안으로 그 기능을 다할 수 없었다.

목차

국문초록
I. 머리말
II. 도당유학의 개시와 초기의 인식
III. 도당유학생의 활동과 위상
IV. 9세기 도당유학의 국제적 양상과 그 배경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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