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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 전개과정과 중종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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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terati Purge of 1519 and King Jungjong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철 (한국국학진흥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34집 KCI Accredited Journals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621 - 666 (46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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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 전개과정과 중종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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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는 16세기 후반 이후 사림이 조선의 정치적 주도세력이 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사림정치’는 실로 기묘사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16세기 전반은 큰 전환의 시기였다. 건국으로부터 100여 년이 흐르며 누적된 변화가 조선을 여러 분야에서 변화시키고 있었다. 기묘사화는 그 변화의 기폭제였다. 때문에 기묘사화에 대한 이해는 이 사건 이후 전개되었던 상황 및 사림세력의 성격과 대비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기묘사화에 대한 기존 해석에는 두 가지 암묵적 가정이 있는 듯 보인다. 하나는 중종이 자신만의 뚜렷한 정치색 없이 수동적으로 이끌려 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보다 남곤이 기묘사화와 조광조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본 논문은 기묘사화 발발에서 조광조 사사에 이르는 약 한 달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서 기묘사화를 이끌어간 주체가 누구인지 해명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본 논문이 잠정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당시 조정에서 중요한 인물이자 기묘사화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김안국이 나중에 내린 완곡한 판단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남곤은 조광조 등을 파직시키려했을 뿐 살해할 뜻은 없었다. 그런데 중종이 남곤의 말을 과신하여 처분이 지나치게 무거워졌다는 것이다. 김안국은 조광조 사사의 원인이 남곤의 말에 대한 중종의 과신이라고 했지만,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한 진의로 보이지는 않는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사화 발생과 조광조 김정 사사를 둘러싼 갈등 : 11월 15일 밤에서 16일
3. 사화 발생을 둘러싼 의문들 : 11월 17일에서 18일까지
4. 중종의 결정 번복과 조광조 사사 : 12월 7일부터 17일까지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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