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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기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9집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5 - 4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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淵齋學派는 연재 송병선과 동생 宋秉珣의 문인 집단을 말한다. 송병선과 송병순은 충청도 지역은 물론,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강학을 통하여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
송병선은 불교와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비판하였으며, 여러 차례의 상소를 통하여 위정척사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도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었다. 이에 따라 그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척사론을 주장하였다. 송병순은 관료를 멀리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는데, 특히 송시열의 학문을 존신하여 소중화론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일본과의 강화조약이 침략의 시작이라면서 척왜론을 주장하였다.
송병선과 송병순은 여러 차례에 걸친 정부의 관직 제수에도 이를 거절하고 재야 유학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1905년 일제에 의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송병선은 고종을 알현하고 오적의 처단과 조약의 폐기를 주청한 뒤에 자결하였다. 송병순 역시 상소를 올려 오적의 처단과 전국 유림의 궐기, 그리고 조약의 파기를 주장하였다. 그는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여는 자결을 기도하였으나 제자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12년 ‘은사금’을 거부하며 자결 순국하였다.
송병선 송병순 형제의 순국은 그의 문인들에게 영향을 주어 일본에 항거하여 투쟁한 민족지사가 적지 않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 스승과 같이 자결한 朴炳夏와 李柱煥이 있다. 鄭璣淵과 李柄運 등은 을사조약 폐기운동에 참여하고 향리에 은둔하였다. 안규용은 「殉義事實」를 편찬하여 안규홍의병의 활동상을 전하였으며, 문인들에게 항일사상을 고취한 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張基洪은 최익현 의병에 참여하였으며, 曺在學와 金容鎬, 宋柱憲 등은 1919년 파리장서운동에 참여하고 고초를 겪었다. 이외에도 趙鍾悳 등 많은 문인들은 일제강점기 은둔하여 스승의 정신을 이어 일제에 항거하였다. 이처럼 연재학파의 문인들은 스승의 뒤를 쫓아 自靖의 길 택했다. 그중에 자결을 택한 이도 있으나 대부분은 스승의 학문을 계승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은둔의 길을 택한 특성이 있다.

목차

1. 머리말
2. 淵齋學派의 형성과 사상
3. 淵齋學派의 민족운동
4. 맺는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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