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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용식 (중국 연변대학교)
저널정보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인천학연구 인천학연구 제27권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123 - 162 (40page)
DOI
10.46331/jis.2017.08.2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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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지역은 20세기 초 대외무역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기존 중국 및 러시아와의 무역에서 일본으로 무역중심이 바뀌었으며 일본의 대륙 점령의 야욕이 그 원인이었다. 인천도 이와 마찬가지로 초기 개항부터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위한 과정으로 무역이 크게 발달하였으며 이들은 각종 조약과 경제정책을 통해 무역이 확대되었으며 일본에 의지하는 형태로 가속화되었다. 물론 이러한 무역활동의 확대는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나 그 목적은 식민지수탈과 대륙침공이라는 명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번영은 정치적 목적이 충족됨에 따라 크게 부침을 반복하게 되었다.
1920년대 간도지역은 연길, 훈춘 2관을 통하여 조선, 러시아 양국과 무역을 진행하였으며 간도지역의 경제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우선, 간도지역의 대외무역발전은 당시의 상품생산을 촉진시켰다. 주로 농업생산의 상품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간도지역의 근대 신식공업이 발전을 가져 왔다지만 기술함량이 적은 제분업, 기름짜는 가공업에 불과하였다. 둘째, 대외무역의 발전은 세수의 증가를 가져왔다. 그러나 당시 중외무역구조의 차별은 간도지역으로 하여금 줄곧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는 상태에 처하게 하였다. 이는 간도지역 자본의 대량 유출을 초래하여 종래에는 간도지역의 화폐가치하락을 조성하여 금융시장의 문란을 초래하였다. 또한 일제와의 저관세는 본국의 민족자본을 보호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상품을 덤핑판매 하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로, 비록 간도지역 국제무역에 있어 여러 가지 폐단이 존재하였지만 객관적으로 간도지역의 근대화 발전을 추동하였다. 1920년대 간도지역의 신식공업, 교통, 통신, 금융 등 근대항업의 발전, 그리고 문교, 위생사업의 발전성과는 대외무역이 발달한 결과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화의 교통시설은 일본이 간도지역의 자원을 약탈하는 기초작업으로 건립되었고 공안국, 감옥, 심판청 및 경찰국 등은 일제가 간도지역 반일세력을 탄압하는 기구로서 이용되었다. 일제는 근대화한 학교를 이용하여 노예화 사상을 선전하였으며 대형금융기관을 이용하여 조선이민의 경제기반을 잠식하였다. 위생사업의 예를 보면 병원을 통하여 민심을 농락하고 간도지역에서의 세력침투를 강화하였다. 간도지역의 근대통신업 발전도 일제가 반일역량을 효과적으로 진압하는 도구로서 시작되었다. 넷째로 비슷한 국제정세와 사회문화적 시기인 1920년대 간도와 20세기 초 인천을 비교하면 국제정세에 따라 무역 흐름이 달라진 것은 동일하였으며 그 위상 또한 비슷하게 흘러갔으나 일본으로 주 무역원이 고정됨에 따라 종속적인 형태로 흘러갔으며 결국에는 주 무역대상인 일본의 움직임에 따라 발전이 변화하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20세기 초 간도지역 대외무역환경
Ⅲ. 1920년대 간도지역의 대외무역
Ⅳ. 20세기초 인천의 무역환경과 간도무역과의 비교
Ⅴ. 나가는 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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