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종서 (중앙대)
저널정보
고조선단군학회 고조선단군학 고조선단군학 제36호
발행연도
2017.6
수록면
5 - 46 (42page)
DOI
10.18706/jgds.2017.06.36.5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세 단군인 왕검이 건국한 고조선 땅 위에 준왕의 조선(중조선)이 있었다. 위만이 그 준왕의 조선 영토를 빼앗아서 조선(후조선)의 왕이 되었고, 한(漢)나라 무제가 그 (후)조선을 멸하고 그 땅에 낙랑군을 설치했다. 따라서 낙랑군 위치를 알면 조선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 낙랑군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은 『후한서』「군국지」유주 편에 낙양 동북쪽 5,000리에 낙랑군이 있다는 기록이 유일하다. 그러나 필자 이전에 이 기록을 가지고 낙랑군, 고조선, 중조선, 후조선의 위치를 고증한 학자가 없었다.
본고(本稿)에서는 『대청일통지』에 기록된 낙양-경사(京師,북경)-봉천(심양)-압록강(단동)에 이르는 청(淸)나라 도로 노선을 1875년에 편찬된 『아세아동부여지도』로 확인하고, 수학적 위치 고증 방법 중에 ‘옛도로와 현대 도로를 비교하여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하는 방법’을 이용하여, 청나라 때 낙양-단동(압록강)을 이은 도로 길이와 현대 고속도로로 낙양-단동 간을 연결한 길이를 비교하여 낙랑군이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하여 보았다.
그 결과 한(漢)나라 때의 도로가 청나라 때의 도로와 동일하게 평탄하고 직선화된 도로였다고 가정하더라도 낙양 동북 쪽 5,000리에 있던 낙랑군은 요녕성 요양시 서쪽 22.36㎞ 지점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나라 때의 도로는 청나라 때의 도로보다 덜 평탄화되어 있고, 덜 직선화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낙랑군과 고조선은 요양 서쪽 22.36㎞ 지점보다 서쪽 더 먼 곳에 있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도로 노선과 도로 길이 측정의 시점과 종점
Ⅲ. 청나라 도로와 현대 고속도로로 본 고조선과 낙랑군의 실제 위치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