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용식 (서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제16권 제1호
발행연도
2017.3
수록면
219 - 254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1862년 전국적으로 발생한 민란 중 2월 14일 발생한 진주민란을 중심으로 민란의 초기발생 과정을 분석했다. 진주민란은 1862년 전국적으로 발생한 71건의 민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랫동안 진행됐다. 게다가 진주민란은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고, 당시 민란은 조선의 체제 붕괴를 가속화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본고는 진주민란을 미국의 역사학자 크레인브린튼이 그의 책 『혁명의 해부』에서 제기한 혁명 분석틀에 의거해 분석하였다. 필자는 이에 따라 진주민란의 원인을 조선의 사회질서와 체제를 떠받쳐온 양반 ‧ 사족의 몰락 또는 위상 하락에 따른 ‘불만족’이라는 심리적 요인에서 찾았다.
특히 크레인브린튼이 분석한 혁명발생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지식인의 이반’이라는 측면에서 민란을 주도한 유계춘, 모의자로 지목된 이명윤 등 사족들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18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족은 그 특권이 약화되고 위상이 급격히 낮아졌다. 이는 17세기 이후 진행된 양반 수 증가, 중앙정부의 지방통치정책 변화, 세도정치로 인한 관료사회 진출 봉쇄 등 사회 ‧ 경제적 변화 때문이다. 사족들은 이러한 이유로 불만을 느껴 조정에 대한 충성심을 약화시켰고, 향촌사회의 유지와 운영으로부터 마음을 접었다.
결국 그들은 국가 또는 체제의 수호자가 아닌 비판자로 변하였으며, 재정악화를 겪던 지방정부의 과도한 부세(賦稅)정책에 대해 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들의 불만을 ‘봉기’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터뜨렸다.

목차

국문 요약
Ⅰ. 시작하는 글
Ⅱ. 재지 사족의 체제 이반
Ⅲ. 진주민란의 발생
Ⅳ. 결론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6)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340-002392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