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휘영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동북아역사재단 영토해양연구 영토해양연구 제12권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74 - 100 (2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6)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의 목적은 독도 편입조치 전후의 지리지 특히 당시 일본의 지리학계를 대표하던 『지학잡지』에 나타난 울릉도·독도 기록을 통해 당시 일본의 울릉도·독도 인식을 검토하는 것이다. 『지학잡지』는 1879년에 창립된 도쿄지학협회의 기관지로, 이 협회 회원은 메이지 정부의 정치가, 군인, 외교관, 화족 등으로 구성된 수뇌집단이며 잡지의 성격은 메이지 정부의 팽창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본고에서 밝혀진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흑룡회의 『한해통어지침』의 기록처럼 동해상의 하나의 섬 ‘양코섬’을 발견했는데 이는 서양과 일본의 해도에도 없는 새로운 섬이라는 것이다. 둘째, 구정부인 에도시대에 오키노시마와 호키노쿠니, 하마다번에 부속하였으나 도쿠가와막부가 조선에 건네주었고, 1905년 죽도 편입으로 일본제국의 새로운 영토가 되었다고 정당화하고 있다. 셋째, 메이지 정부의 태정관 지리과에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를 부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즉 에도막부와 메이지 정부에서 조선에 넘겨주었지만 리앙쿠르호가 ‘양코섬’을 발견하기 이전에 오키노쿠니, 호키노쿠니, 이와미노쿠니의 부속으로 있었다. 그 섬을 새로 발견하여 제국의 신영토가 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지리학계의 의도적 오판으로 다분히 정보 유포의 성격이 강했다고 하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태정관 지령문」의 성안 과정
Ⅲ. 『지학잡지』에 나타난 울릉도 · 독도 기록과 그 인식
Ⅳ.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910-001988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