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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왕무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36집
발행연도
2016.10
수록면
104 - 123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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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 후반 한성부 도성의 서쪽 지역인 西郊의 盤松坊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경을 역사적 사실 관계와 비교하여 서술하였다. 새로 발굴한 도성도와 연대기자료를 비교하여 서교의 변화상을 밝히고자 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조선시대 도성을 기준으로 그 외부는 郊 혹은 郊外라고 하였다. 거리의 차이에 따라 近郊, 遠郊로 구별되었다. 방위에 따라서 남교, 북교, 서교, 동교로 구분해서도 불렸다. 도성을 둘러싼 사방의 교외는 도로와 농지, 주택이 위치하였으며 도성내 거주민의 생활을 지지하는 보장지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였다. 도성 주변의 4개 교외 중에 국초부터 국가적인 관심을 받고 개발된 곳이 서교이다.
서교가 주목되는 점은 조선시대 대외관계가 주로 이어지던 곳이며, 외부 세력이 도성을 공격할 때 늘 이용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고종대 개항 이후에도 인천과 남양의 바다를 거쳐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처음 한국을 접하던 지역이었다. 명과 청의 ‘외교공관’이라고 할 모화관이 이 지역에 있기는 하였지만, 근대적 국제공법에 따라 외교공관이 위치한 것도 서교의 반송방이었다. 반송방에 처음 세워진 공관은 일본공사관이었다. 일본은 강화도에서 포함외교를 통해 조선왕조를 개항하게 한 후 통상과 자국민의 통행을 위해 도성에 공관을 두고자 하였다. 왕조정부에서는 도성내에 외국인이 거주한 사례가 없었고, 모화관에 중국인들이 거처하던 사례를 이용하여 경기감영 인근의 淸水館에 임시로 일본공사 일행을 머물게 하였다.
본고는 개항 이후 최초의 일본공사관이 설치되었던 청수관에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인이 작성한 그림 자료를 중심으로 청수관 인근 반송방과 서교의 풍경을 그려보고자 했다. 학계에 새로 소개하는 자료는 일본 국립공문서관 소장의 ‘漢城遠望之圖’이다. 본고는 「한성원망도」의 내용을 연대기 자료와의 비교를 통해 이 자료가 지니는 역사적 사실 관계를 서술하고자 하였다. 또한 지도상에서 서교와 반송방에 관련된 역사적 사물들의 관계를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19세기말 서교의 실태와 함께 조선시대 서교의 변화된 모습을 밝혀 도성 인근의 풍경을 살펴보았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盤松坊 지역의 변화와 일본공사관의 설립
Ⅲ. 「漢城遠望圖」에 묘사된 서교의 풍경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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