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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경진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61輯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165 - 214 (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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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려 예종대 동북 9성의 개척과 관련하여 개척 범위를 파악하고 각 城들의 구체적인 위치를 비정하는 한편, 公嶮鎭에 비를 세워 경계로 삼았다는 사적에대해 비판 검토한 것이다.
현재 동북 9성의 개척 범위에 대해서는 함흥평야에 국한된다는 설에 대해 두만강 북쪽까지 이르렀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길주 이남에 분포한다는 실학자들의 주장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고려사』 지리지에서 동북 9성과 연결된 咸州와 吉州, 端州 연혁의 자료적 근거와 「英州廳壁上記」의 “方 300리” 기록, 그리고 당시 작성된 墓誌銘과 주요 전투 기록 등을 종합해 보면, 동북 9성은 吉州 이남 지역에 분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윤관이 개척 후 공험진에 비석을 세워 경계로 삼았다는 기록은 「영주청벽상기」에서 개척 지역이 본래 고구려 땅임을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 ‘高句麗 古碑’를 근거로 생성된 것이다. 이 고비는 개척 지역에 있던 진흥왕의 摩雲嶺碑를 이용해서 제시한 것이었다. 공험진은 바로 마운령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고려말 이 지역을 다시 개척하면서 이 비는 “공험진에 있던 고구려 고비”에서 “공험진에 세운 고려 비”로 바뀌면서 동북 9성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동북 9성의 置廢 과정
Ⅲ. 동북 9성의 위치와 범위
Ⅳ. 公嶮鎭의 위치와 立碑 문제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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