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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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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은주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54輯
발행연도
2016.3
수록면
127 - 15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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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발해의 대외 관계사 연구가 신라·당·일본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경계에 대한 문제 역시 신라·당에 집중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러시아와의 공동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연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말갈과의 경계 연구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발해와 거란의 경계에 관해서는, 본격적으로 거란과 충돌하여 다투던 멸망기에 요동지역의 향방에 대해 연구가 편중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는 양자의 경계 변화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무리가 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시론적으로 발해 전 시기를 4시기로 나누어, 당시 동북아 동향과 양자의 관계를 기반으로 그 경계 변화를 살펴보았다.
첫 단계인 건국초기에는 발해와 거란의 중심지가 떨어져 있어 실제적인 영역을 맞댄 경계를 이루진 못했으나, 요하를 기본 라인으로 하여 요동이 맞붙은 선이 아닌 광역의 경계로 작용하였다. 두 번째 8세기에는 거란의 공간 확대가 영주(조양)까지 이뤄지고, 발해의 요동지역 장악으로, 적어도 영주-요동성(요양)을 경계로 하는 요하 인근까지 양자의 경계가 내려왔다고 생각된다. 북쪽에서는 발해의 부여부 일대와 송눈평원에 대한 적극적인 경영으로 동서 요하에서 눈강까지 경계가 확대 형성된다. 9세기 전반에는 발해의 지방지배 강화와 남실위에 대한 경략으로 서북지역으로는 눈강의 지류인 타루하까지 발해의 영향이 확대되었다. 그에 따라 거란을 동에서 북으로 감싸며 경계가 이루어져 거란에 대한 발해의 압박이 강화되었다. 이시기 거란 일부는 회흘에 귀속하여 서쪽으로 이동했다가 842년경 다시 원거주지로 돌아왔고, 9세기 후반 세력을 확대하여 양자의 남부 경계가 요하 하구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발해와 거란 사이의 남북 경계가 확정된다. 마지막으로 10세기에 들어 거란의 8부 통일과 동북제민족에 대한 적극적인 경략 및 요동진출로 양자의 경계는 동쪽으로 이동하였고, 결국 926년 거란에게 발해가 멸망하면서 양자의 경계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건국 초기 광역 경계의 형성
Ⅲ. 8세기 경계의 확대
Ⅳ. 9세기 경계의 확정
Ⅴ. 멸망기 경계의 충돌과 붕괴
Ⅵ. 맺음말
〈참고문헌〉
〈中文抄錄〉

참고문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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