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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연식 (동국대학교(서울캠퍼스))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2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75 - 97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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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의 開興寺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었지만 최근의 寺址시 발굴 조사와 문헌자료에 대한 검토를 통해 보성군의 대표적 사찰이었으며, 특히 17세기에 이곳에 주석하였던 승려들이 다양한 대내외적 활동을 하였음이 밝혀졌다. 이 글에서는 현재까지 알려진 개흥사의 역사 및 이곳에 머물렀던 승려들의 활동사항을 정리해 보았다. 개흥사는 고려시대이래 조선후기까지 법등이 유지되었는데, 특히 17세기에는 다양한 佛事들을 여러 승려들에 의해 진행되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17세기 중엽 克能스님은 여러 재가 신자 및 동료 스님들의 후원을 받아 여러 종류의 佛書들을 간행하였고, 17세기 후반에는 戒修스님이 본인이 모은 재물과 주변 지역민들의 시주를 모아 보성군 지역에서 절실히 필요로 했던 石橋두 개를 건립함으로써 사찰의 사회적 역할을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鏡玲스님은 여러 전각을 수리, 조성하고 불상을 새로 조성함으로써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이 17세기 후반은 개흥사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개흥사의 활동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런 가운데 浮休系의 嫡傳을 잇는 無用秀演스님과 淸虛系로서 大興師의 宗師계보를 이은 蓮潭有一스님이 잠시 이곳에 머물렀던 사실이 확인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7세기 이전의 상황 및 17세기 중엽 克能의 佛書간행
3. 17세기 후반 戒修의 石橋건립과 鏡玲의 殿閣·佛像 조성
4. 18세기초 無用秀演의 住錫과 水陸齋거행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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