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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5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37 - 6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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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 前漢은 북방 유목민족을 통제하기 위해 기미책을 채택했다. 전한의 황제는 그들의 지도자에게 명예직을 주어 부족을 통제하게 했는데 이것이 기미책이었다. 당은 7세기에 제국을 확장하면서 기미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8세기 초반 이래 당은 적극적인 기미책에서 소극적인 기미책으로 전환했다. 그것은 중국 內地에 藩鎭을 두고 절도사를 그 우두머리로 삼는 것이었다. 그 결과 특정 번진은 점점 자율권을 얻어 독립국가처럼 되었고 절도사는 非漢族들까지 통치했다. 이것은 원래의 기미책이 변질된 것이었다.
새로운 기미책은 재당 신라인들에게 기회가 되었다. 그들을 다스리던 절도사는 다양한 재량권을 가졌다. 재당 신라인과 절도사는 이해관계를 같이 했다. 부유한 신라인들은 경제적 부를 통해서 관직을 사고 절도사는 그들을 통해 나머지 신라인들을 지배했다. 이러한 관계는 양자의 공존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장보고는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성공한 재당신라인이었으며 신라로 돌아 온 이후 서해의 霸者가 되었다. 이처럼 재당 신라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신라와 당에서 초래된 권력 공백 때문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당의 기미책과 그 변화
Ⅲ. 재당 신라인들의 활동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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