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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기범 (경기대학교)
저널정보
동서미술문화학회 미술문화연구 미술문화연구 제7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75 - 93 (19page)
DOI
10.18707/jacs.2015.12.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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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두 가지 관점에서 작성되었다. 그 첫 번째는, 대체적으로 여러 서론서에서 안진경을 성당(盛唐)을 대표하였던 서예가로 기술하고 있는데, 과연 이것이 옳은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둘째는 북송시대 안진경의 수용이 어떻게 이루어 졌으며, 그것은 논서시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가의 문제였다.
먼저 첫 번째 문제는, 안진경이 살았던 동시대와 이후의 서론과 논서시를 살펴봄으로써 파악할 수 있었다. 안진경은 적어도 그가 살았던 성당과 중당(中唐)의 시대 서론서(書論書)에는 훌륭한 서예가로써 거론된 것이 없고, 그에 관한 논서시(論書詩)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이는 그의 글씨가 전혀 당시 사람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를 성당 혹은 중당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대표성을 부여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후대에 의하여 평가되어진 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서예가였다.
두 번째는, 기존의 연구들에서는 소식, 황정견, 미불의 서론을 중심으로 안진경의 서예에 대한 수용을 살폈다. 그 수용이란 서론에 ‘인품(人品)’을 수용하는 것이었고, 또 안진경의 ‘신의(新意)’를 수용하는 것으로, 이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상의(尙意)’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수용들은 소식에 이르러 시작된 것이 아니라 북송 초기 매요신(梅堯臣) 등 여러 학자들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안진경에 대한 평가는 소식에 이르러 서예사에 왕희지 다음가는 사람으로 확고해졌지만, 그의 이론은 사실상 대부분 북송 초기 학자들의 이론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언
Ⅱ. 中唐 및 五代 서가들의 안진경 글씨에 대한 평가
Ⅲ. 북송 초기 안진경 서에 대한 인식의 변화
Ⅳ. 결어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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