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현진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60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63 - 91 (29page)
DOI
10.17647/jss.2015.08.60.6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전통시대 수도는 국왕이 거주하며 중앙의 핵심 관서들이 존재하는 곳으로서 다른 지역과 차별적인 지위를 지녔다. 그러한 수도에 지방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을 ‘상경’이라 한다.
조선이 건국된 후 지방에서 한양에 올라와 벼슬길에 나아가는 방법은 문·무과를 포함한 ‘科擧’가 가장 일반적인 통로였다. 과거를 통한 상경은 가장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인 만큼 조선 전시기 동안 이루어졌다.
조선 사회는 임진·병자 양란을 겪으면서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는 지방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정계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되었고, 과거가 아닌 또 다른 上京從仕의 길이었다. 이러한 出仕는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宋時烈·宋浚吉로 대표되는 山林세력이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한 상경은 산림과 그 운명을 함께 하여 17세기 이후에도 지속되지만 18세기 탕평군주들이 등장하면서 그 위세가 한풀 꺾였고, 19세기 세도정치기가 되면서 그 위세가 더욱 위축되었다.
18세기 숙종 후반부터 영조, 정조대는 인구가 증가하고 수도 한양이 상업도시로 변모하면서 벼슬살이를 위해 상경하는 사람도 증가하지만 그 밖에 상인이나 평민도 수도로 모여드는 추세였다.
그렇다면 상경을 통해 보는 수도의 성격이란 무엇인가.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삼국과 고려 보다는 수도와 지방 간의 차별적이고 계서적인 면이 완화된 국가였다. 그러한 측면은 ‘상경’, ‘居京’이라는 면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벼슬하고, 그럼으로써 서울에 거주하는 것에 대한 법적 제약이 없었던 것이다.
또 삼국과 고려 보다는 수도와 지방 간 차별성이 완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한양은 여전히 지방에 비해 首位에 위치하였다. 특히 18세기부터 서울[京]과 지방[鄕]의 分岐 현상이 두드러지고 서울이 상업도시로 변모하면서 신분을 초월하여 지방 사람들의 상경이 늘어났다. 그 이전 시기에 비해 수도 한양의 집중화 현상이 현저해졌고 그 이후는 그러한 현상이 심화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科擧를 통한 상경: 조선 전시기
Ⅲ. 遺逸薦擧를 통한 상경: 17세기 이후
Ⅳ. 京鄕分岐와 수도집중, 상경: 18~19세기
Ⅴ. 맺음말: 수도 한양의 성격
참고문헌
ABSTRACT
국문초록

참고문헌 (5)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1838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