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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문종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1집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71 - 94 (24page)
DOI
10.18496/kjhr.2015.08.5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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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건국 직후부터 해양의 방어 및 외교적인 교섭, 왜구 회유책 등 다양한 왜구대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조선에 투항하는 向化倭人은 급증하였고 왜구의 침입은 감소하였다. 皮尙宜의 아버지 皮沙古는 태조대에 向化하여 受職倭人이 되었다. 피상의는 태종 말에 侍衛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서는 향화왜인에게 정치?경제?사회적인 우대책을 실시하였는데, 피상의는 향화왜인 우대책에 의해서 과거가 아닌 取才나 遞兒職을 통해서 관직에 진출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상의가 對日使行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는 1433년(세종 15) 3월에 귀국 도중에 왜구에게 약탈당하여 赤間關에서 머물러 있던 회례사 李藝 일행에게 옷과 양식을 가져다 준 것이었다. 그 후 피상의는 본격적으로 대일 사행에 참여하여 1443년부터 1461년(세조 7)까지 5회에 걸쳐 壹岐島와 對馬島에 다녀왔다. 그는 대일사행에서 정사 또는 종사관, 통사로 활약하였다. 특히 그는 조일간의 외교현안이었던 歲遣船의 定數 문제를 비롯하여 왜구의 동향 및 일본의 정세 탐지, 漂流人의 송환, 대마도주 및 도주가에 대한 問慰 등 대일교섭의 주요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이와 같이 피상의의 대일 교섭 활동은 조선이 일본과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전개하고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피상의가 대일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향화왜인의 아들로 일본어에 능통하였으며, 사행을 통해서 일본의 지방 호족들과의 교류를 통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외교적인 활동을 인정받아 피상의는 靖難原從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東萊를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조선 초의 왜구대책과 향화왜인
3. 피상의의 대일 교섭 활동
4.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抄錄】

참고문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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