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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국제지역연구 국제지역연구 제8권 제1호
발행연도
2004.4
수록면
107 - 134 (28page)
DOI
10.18327/jias.2004.04.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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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과 단절의 러시아 역사 가운데 19세기 러시아는 과거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누적되어 온 깊은 골과 간격, 사회적 모순을 치유하고 해결하기 위해 각성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 러시아가 몸부림친 세기이다. 바로 이 몸부림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것이 1861년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제 폐지 이다. 또한 이 외에도 그는 행정, 사법, 군사, 교육 및 출판 등의 분야에서 일련의 개혁들이 단행되었다. 그러나 농노제 폐지를 포함한 이들 개혁은 국가와 사회, 군주와 지주, 지주와 농민, 동시에 다양한 여러 사회-정치적 흐름들 간의 복잡한 타협의 산물로 근본적인 개혁에 이르지 못했으며, 도리어 과격 혁명분자들의 준동을 초래하였다. 결국 이와 같은 사태발전은 개혁의 주도자였던 황제를 비롯한 정부의 자유주의적 고위관료들을 다시 반동의 길로 돌아서게 하였고, 이는 1881년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로 이어지면서 러시아는 또다시 극심한 반동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이 반동의 시대는 20세기 초 대혁명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알렉산드르 2세는 스스로가 대개혁의 실시에 앞서 "농노제가 밑으로부터 폐지되는 것을 기다리기보다는, 위로부터 폐지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라고 언명하였지만, 바로 이 순간부터 그는 이미 위로부터의 개혁인 자신의 개혁이 전제권을 위협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선을 그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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