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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여성구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1호
발행연도
2014.8
수록면
37 - 93 (5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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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신라 불교교단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되었으며, 그 단초로서 수계 과정과 승적 작성에 주목한 글이다. 비록 자료가 빈약하지만 受戒와 僧籍이라는 문제에 국한시켜 살펴보았다.
첫째, 출가 이후 사미(사미니)계를 받을 때까지의 행적을 고찰하였다. 둘째, 사미(사미니)계의 내용을 고찰하였다. 《사분률》에는 사미계로서 10개의 戒律門과 24科 284條로 구성된 威儀門을 들고 있다. 신라 사미(사미니)들이 사미계를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셋째, 사미(사미니)이후 구족계를 받을 때까지의 행적을 고찰하였다. 사미계를 받고 난 이후 수학한 경전은 일정하지 않으나 경전 연구에 매진하였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또 다른 스승을 찾아 순력하거나 특정 사찰에 가서 수학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이 구족계를 받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음을 밝혀보았다.
넷째, 구족계의 내용과 수계 사원을 고찰하였다. 통도사 금강계단 설립 이전에는 어떻게 수계하였는가? 수계가 이루어진 사찰은 어느 곳인가? 출가사원과 수계사원을 의도적으로 구분했는가? 계단사원은 교종사찰에만 존재했는가? 사단사원도 있었는가? 私壇寺院도 있었는가? 등등의 문제도 주목하였다. 백제의 경우 587~588년경 이전부터 10사에 의한 수계 작법이 존재하였다. 신라 역시 《四分律》에 근거하여 수계시 10사 제도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관단사원으로 불리는 수계사원은 通度寺(良州)ㆍ嚴川寺(康州)ㆍ長谷寺ㆍ莊義寺(漢州)ㆍ福泉寺(溟州)ㆍ普願寺(熊州)ㆍ華嚴寺(全州)ㆍ靈神寺(武州)ㆍ法泉寺(朔州)등이 있었다. 관단사원은 지역적인 안배로 각 州에 하나 혹은 두개가 있었으며, 중고기에는 통도사가, 중대에는 화엄사가 수계의 대표적 사원이었다. 신라의 계율사상이 중고기에는 律師가, 중대에는 유가계 승려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비교해 화엄계의 계단사원이 많다는 것은 화엄이 하대에도 성행하였음을 반증하는 한편 교단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화엄종 사원에도 수계와 관련한 승려가 존재했음을 부석사에서 확인할 것이다. ‘관단’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반대로 사찰이 독자적으로 계단을 만들고 수계하는 私壇사원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 종단에서는 자신의 종풍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이에 독자적인 계단설치가 가능했음을 밝혀보았다. 다섯째, 구족계를 받은 이후 승적에 편입되는 과정을 규명하였다. 구족계를 받은 이후의 행적을 어떠한가? 신라에 승적이 있었는가? 승적은 언제부터 작성되었으며, 어떠한 내용을 기재했을까? 등등의 문제에 주목하였다. 승적 작성의 가장 큰 이유는 국가의 경제정책과 맞물려 있음을 밝히고, 그것의 작성 시기를 추적해 보았다. 그리고 승적의 계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문제도 고찰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受戒
Ⅲ. 僧籍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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