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재동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25집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167 - 201 (3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경서석의經書釋義』로 알려진 이황李滉(退溪, 1501~1570)의 경서 해석 자료의 명칭을 재검토하고, 17세기에 들어와 이황의 경서 해석이 기호학파 몇몇 학자들에 의해 논란이 되는 과정을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첫째, 『사서석의四書釋義』와 『사서질의四書質疑』의 편찬 주체 및 전승 과정, 둘째, 송시열宋時烈(尤庵, 1607~1689)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의 퇴계설 비판 과정과 추이, 셋째, 16~17세기 퇴계학파 경학의 특징 등을 대략적으로 조명하였다.
퇴계학파退溪學派의 사서四書해석은 금보琴輔(梅軒, 1521~1584)의 『사서질의四書質疑』ㆍ이덕홍李德弘(艮齋, 1541~1596)의 『사서질의』ㆍ이황의 『사서석의四書釋義』가 있음을 밝혔으며, 『논어』를 중심으로 세 가지 텍스트의 구성과 수록 내용 등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금보의 『사서질의』는 퇴계학파의 사서 주석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완성되었으며, 후일 금응훈琴應壎(勉進齋, 1540~1616)이 『사서석의』를 편찬할 때 수록 내용의 상당 부분이 반영되었다.
퇴계학파의 경서 해석 가운데 가장 많이 논란이 되었던 것은 이덕홍이 편찬한 『사서질의』를 비롯한 『심경질의心經質疑』ㆍ『주역질의周易質疑』 등의 질의류質疑類이다. 이덕홍이 편찬한 질의류는 완성 당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후대에 전승되는 과정에서 김만휴金萬烋(魯魯齋, 1625~1694)가 송시열의 주장을 받아들여 개정한 이후 끊임없는 논란에 휩싸였다. 송시열이 이덕홍의 저술에 관심을 보인 것은 이덕홍의 저술이 곧 이황의 저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남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17세기 후반까지 이덕홍의 권위가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아쉬운 점은 『사서질의』와 『사서석의』가 원형을 잃었으며, 이로 인해 편찬의 주체 개정 과정 등을 자세하게 고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17세기 퇴계학파의 경서 해석은 본문에서 언급한 인물과 자료 이외에도 김부륜金富倫(雪月堂, 1531~1598) 유운룡柳雲龍(謙庵, 1539~1601)ㆍ정경세ㆍ김륭金隆(勿巖, 1549~1594) 등이 남긴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할 때 온전한 실상이 드러날 것으로 여겨진다.

목차

요약문
1. 서론
2. 이황의 석의釋義 작업과 『사서석의四書釋義』의 간행
3.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퇴계설退溪說 비판과 『사서질의』의 전승
2.『사서질의』의 개정改定과 송시열의 역할
4.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1090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