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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榮官 (제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7호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159 - 195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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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용 묘지명의 발견으로 문헌 기록에 전혀 보이지 않는 새로운 인물이 당에서 활동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일용 묘지명은 개석과 지석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묘주의 인적 사항과 출신, 당에서의 활동 등에 대해 기록하였다. 묘지명은 현재 중국 섬서성 서안시 소재 대당서시박물관에서 수장하고 있다.
묘지명의 내용에 대해 검토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묘주는 신라 출신으로 713년 신라에서 태어나 당에 들어와 황제를 숙위하였고, 774년 향년 62세로 세상을 떠난 金日晟으로 字는 日用이다. 그는 735년 무렵 당에 들어와 숙위로 활동하였고, 장안성 숭현방에서 살았다. 부인은 장씨로 755년경에 먼저 세상을 떠났으며 774년 남편이 세상을 뜨자 장안성 영수향에 합장하였다. 벼슬은 銀靑光祿大夫 光祿卿의 자리에 올랐고 사후에 ?州都督으로 추증되었다.
김일용은 신문왕의 손자이자 효소왕과 성덕왕의 조카였고, 효성왕과 경덕왕의 사촌형이었다. 그는 당에 숙위하러 갔다가 신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당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것은 신라 중대 숙위의 특성상 근친과 혈족을 정치로부터 분리시켜 왕권을 강화하고자하는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경덕왕은 뒤늦게 얻은 어린 아들의 왕권을 위협할만한 나이와 경륜을 갖춘 김일용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배제시키고자 귀국을 막았다. 경덕왕을 이어 즉위한 혜공왕 역시 정적이 될 수 있는 김일용의 귀국을 막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김일용은 신라 내부의 정치적 문제로 인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당에서 일생을 마감하였던 것이다.
김일용 묘지명은 당에서 활동한 신라인의 모습을 알려주는 새로운 자료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역사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자료로 재당신라인들의 활동 연구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묘지명의 현황과 판독
Ⅲ. 묘지명의 내용
Ⅳ. 역사기록의 補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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