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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채미하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55호
발행연도
2014.5
수록면
167 - 19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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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신라의 건국신화가 국가제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 변화되었음을 살펴본 것이다. 남해왕 3년에 설치된 시조묘에는 박씨집단의 族祖인 혁거세를 모셨다. 하지만 아달라왕대 신라연맹체의 祭天이 사로국의 시조묘를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혁거세는 국조가 되었고, 신라 상고기 내내 시조묘의 主神이 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혁거세의 위상 변화는 혁거세신화에도 반영되었는데, 혁거세의 죽음과 五陵전승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혁거세의 배타성은 뱀의 방해로 알영이 혁거세와 합장하지 못하였다는데서 생각해 보았다.
소지왕 9년에 설치된 신궁의 주신은 혁거세로, 혁거세는 全국가적 시조왕의 성격을 지녔다. 이것은 신라의 건국신화에서 혁거세?알지?탈해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특히 김씨왕실은 자신들의 시조인 알지를 혁거세신화에 부회하였다. 그리고 혁거세가 계정에서 태어났다든가, 알영이 혁거세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전승을 통해 신궁단계에서 알영이 혁거세신화에 포용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혁거세의 포용성은 신궁이 설치된 장소인 시조가 初生(誕降)한 장소, 즉 양산과 나을의 성격에서도 알 수 있었다.
신라 중대 김씨왕실은 중국 상고 전승에 나오는 소호금천씨에서 김성 칭성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오묘의 수위에는 그의 후손인 성한을 태조로 모셨고, 혜공왕대에는 미추왕을 김성 시조로 하고 오묘에 모셨다. 이러한 변화는 기왕의 혁거세?알영?탈해신화의 내용과는 달리, 혁거세와 알영을 서술성모가 낳았으며 탈해를 동악대왕으로 불렸다는데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건국신화를 보면 계정, 계림, 백마가 서쪽과 관련있다고 하면서 알영, 알지, 혁거세 탄생의 유사성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혈연적 계보를 중시하는 오묘제가 신라의 건국신화에 큰 변화를 주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건국신화와 始祖廟
3. 건국신화와 神宮
4. 건국신화와 五廟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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