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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방용철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72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191 - 224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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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 고구려의 불교정책에 대해 학계는 보덕관련 사료에 주목해왔다. 이를 근거로 영류왕대 도교가 수용되었고, 연개소문 집권 후에는 본격적인 도교진흥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불교를 배척했다는 흐름으로 논의를 심화해 온 것이다. 그러나 핵심적 근거로 인식되어 온 ‘寶藏奉老普?移庵’ 설화는 역사적 사실성에 문제가 있으며, ‘高麗靈塔寺’ 설화 역시 새로운 이해가 가능하다.
보덕의 활동을 감안한다면 도교수용 문제에서 연개소문과 일정한 노선의 차이를 지녔음은 인정된다. 다만 보덕이 계속된 정치적 탄압에 밀려나 평양성을 벗어나고 다시 백제로 망명하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치 않다. 혹 보덕이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7세기 고구려 불교계 전체의 상황이라 볼 수 없음은 분명하다.
보장왕 책봉과 연동하였던 도교 수입은 그 자체로 일정한 의의가 있겠지만 연개소문 집권기의 주요 쟁점이라 보기는 힘들다. 다양한 정치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였던 불교계 역시 현실적 정치력 확보에는 뚜렷한 한계를 지녔음이 확인된다. 반면 국망의 위기에 처한 고구려인들에게 현실적 안위를 보장해 줄 수 있었던 朱蒙과 柳花夫人(혹은 東明王母ㆍ母夫人)은 새롭게 주목받았던 듯하다. 이런 과정에서 고구려 전통의 신앙은 크게 확장되었고, 고구려 집권층은 국조신 숭배를 통해 내부의 결집력을 이끌어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普德 관련 기록의 검토
Ⅲ. 불교계의 정치사회적 기능과 한계
Ⅳ. 전통 신앙의 발전과 國祖神 숭배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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