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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호태 (울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8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137 - 196 (6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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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서역문화 요소는 인물, 기물에서 회화기법과 종교 관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평양권 및 집안권 고분벽화에서 고르게 발견되는 서역문화 요소도 있지만 평양권이나 집안권 고분벽화에서만 확인되는 것도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집안권 고분벽화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불교 관련 서역 문화요소이다. 서역인의 형상을 한 승려, 여래, 보살과 천인 등은 고구려가 불교신앙과 문화를 받아들이는통로로 기존의 북중국길 외에 초원길도 사용했음을 확인시켜준다.
초원길과 북중국길을 이용한 고구려의 동서교류는 동북아시아에서 고구려의 패자적 지위가 확립된 5세기 전반부터 본격화 한 것으로 보인다. 1세기 이상 지속된 동아시아 4강체제는 고구려가 동서교류를 통하여 보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소화하면서 보편성 높은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 좋은 토양을 제공해준 것으로 판단된다.
6세기 중엽 이후, 고구려의 동서교류가 고분벽화 제재 구성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 시기로 편년 되는 벽화고분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현실적으로 분석 대상이 거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벽화 구성이 단순화 하면서 제재 분석이 어려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651년경 사마르칸드의 소그드왕 와르후만을 방문했던 고구려 사절의 존재로 보아 초원길을 통한 고구려의 동서교류는 7세기 이후에도 계속되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고구려 사절단의 이러한 활동이 고구려 사회 문화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직은 미지의 상태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4~7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서역문화적 요소
Ⅲ. 서역문화요소의 성격과 갈래
Ⅳ. 동서교류의 두 길와 고구려 문화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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