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광만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19권 제1호
발행연도
2009.6
수록면
85 - 114 (30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에서는 靑衿錄이 조선 후기의 교육 실태에 접근할 수 있는 주요 통로가 된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기존의 해석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하였다. 이제까지 청금록에 대한 해석은 지방 사족 자제들이 仁祖 시기에 추진된 교생고강법을 회피하기 위해 四學의 靑衿錄을 모방하여 작성한 것으로서, 肅宗 이전까지는 확산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과거응시자격을 강화하는 조치에 의해 제도적으로 정착하였다고 파악한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청금록이라는 명칭이 주로 肅宗 以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점과 청금록이 과거제도와 관련이 있는 이상 자의적으로 작성된 사적 문서가 아니라 制度的으로 公認된 名簿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청금록은 柳?垣의 지적처럼 士族子弟의 名簿일 수 있고, 기존의 연구처럼 이전의 東齋生ㆍ額內生ㆍ上額生의 명단과 중첩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과일 뿐이고, 청금록이 정책적으로 공인된 이유가 설명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고는 靑衿錄이 작성된 이유를 관련 政策의 變化 속에서 해명하고, 그 制度的 位相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지방 향교에서 청금록이 공인된 데에는 17세기부터 강화되는 敎育正常化 政策이 영향을 미쳤고, 특히 課試制度의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고 파악하였다. 즉, 1654년 (孝宗5년) 경을 전후로 추진된 교육정상화 정책과 課試政策을 통해 지방 향교의 靑衿錄 작성이 요청되기 시작하여, 肅宗 이후부터 확산되었다고 추정하였다. 과시제도의 운영을 염두에 둘 때, 각 鄕校는 응시자격을 갖춘 예비응시생 명단인 청금록을 작성하여 이 중에서 몇 명을 추천하고, 각 도에서는 이 추천자를 대상으로 抄擇하는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각 도에서 추천된 자들은 다시 중앙에 모여 生進試의 會試에 응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발ㆍ추천 과정에서 규정을 어기거나 실력이 못 미치는 자들이 응시하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자격심사를 강화하는 규정을 마련되었다. 1739년(英祖 15년) 경에 송인명이 제안한 내용은 이러한 간헐적 조치의 한 사례로 보인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할 때, 조선 후기 향교의 청금록은 단지 사족 자제의 명부로만 이해하기 어렵고, 당시 시행된 교육정책 및 과거정책의 산물로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목차

《요약》
Ⅰ. 序論
Ⅱ. 靑衿錄의 用例
Ⅲ. 朝鮮 後期 鄕校의 靑衿錄에 대한 또 다른 해석
Ⅳ. 結論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300-003349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