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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광만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교육사학회 교육사학연구 교육사학연구 제23권 제2호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227 - 25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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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후기 과시제도를 구성하는 개별 과시가 조선 전기에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신설되고 변화하였는지를 고찰하였다.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15세기의 과시는 성균관 유생을 대상으로 하는 춘추과시, 사학생과 각 도 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도회가 있었다. 태종대에 권학사목 에 의하여 과시법이 모색되고, 세종대에 춘추과시와 도회 규정이 정비되면서 각각 과시로서 성립되었다. 세조대에는 경학교육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제술 중심의 과시는 약화되었지만, 예종대에 다시 재개되어 성종대에는 『경국대전』 <장권>의 규정으로 수록되었다.
둘째 16세기에는 다양한 과시가 마련되었다. 16세기의 과시들은 이전의 춘추과시·도회와 같이 『경국대전』의 과시를 계승한 유형, 윤강·윤차 및 승보와 같이 학교시가 과시로 변화된 유형 그리고 정시·전강과 같이 신설된 유형으로 구분된다. 승보는 일찍부터 과시로 운영된 듯하지만, 나머지 과시들은 주로 중종과 명종대에 과시로 법제화되었다. 이러한 과시의 신설 경향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셋째 조선전기에 다양한 과시가 신설된 요인은 표층적·심층적 두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표층적인 요인으로는 제술·고강 병행정책을 들 수 있다. 제술과 고강을 병행하려는 정책 때문에 제술로 평가하는 과시와 고강으로 평가하는 과시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또한 심층적인 요인으로는 교육진흥에 관한 당시의 인식을 들 수 있다. 조선전기의 교육당국은 유생들이 자발적으로 학교에 오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기본 인식이 있었고, 이 때문에 강한 인센티브를 주는 과시를 활용하였던 것이다. 이점에서 과시는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으면서 교육을 진흥시키려는 고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15세기의 과시
Ⅲ. 16세기의 과시
Ⅳ. 결론
참고자료
Abstract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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