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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영옥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45호
발행연도
2012.11
수록면
89 - 118 (30page)
DOI
10.15299/jk.2012.11.4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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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의 상례가 사대부 집안의 상례와 다른 큰 차이점은 卒哭 이후 ‘?’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는 ‘永?’가 아니라 ‘告?’를 뜻한다. 永?는 초상을 마친 뒤 神主를 사당에 봉안하여 代數가 허락하는 한 영구히 廟食하는 이른바 ?廟 절차를 가리킨다. 告?는 葬事 이후 返魂한 새 신주를 졸곡 다음날 昭穆에 따라 祖廟에 班?하여, 祖廟의 신주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그 자리에 앞으로 새 신주가 들어올 것임을 미리 알리는 절차이다.
??家禮??에는 졸곡 이후에 ‘告?’가 존재하지만, 조선전기 ??國朝五禮儀??나 조선후기 ??喪禮補編??을 비롯한 국가전례서에는 告? 절차가 생략되어, 조선 왕실은 亡國때까지 한 번도 고부 절차를 거행하지 못했다.
조선 왕실에서 고부가 거행되지 못한 이유는 첫째, 唐ㆍ宋이나 고려가 흔히 短喪制으로 상례를 거행하여 이미 고부 절차가 민멸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묘제가 後漢 때부터 同堂異室制로 바뀌어, 昭穆에 따라 운영된 古禮의 고부가 그 본래 의미를 퇴색했기 때문이다, 셋째, 초상이 끝나면 영부하니 고부는 영부와 일정정도 중복된다고 인식되어 그 절차 생략에 비교적 아쉬움이 덜했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의 두 의미
3. 告? 생략의 요인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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