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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등학 (강릉원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요학회 한국민요학 한국민요학 제35집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7 - 32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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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본디 강원도와 그 인근지역의 향토민요로서 나무하기, 나물뜯기, 모심기, 논매기, 밭매기, 삼삼기 등과 같이 산과 들, 그리고 집안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할 때, 그리고 여럿이 어울려 놀거나 혼자 있어 무료할 때 부르던 노래이다. 다시 말하면, 아리랑은 향촌사회의 일반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흔히 부르는, 특별하지 않은 노래인 것이다.
유랑예인집단인 사당패는 이러한 노래 중 <아라리>를 가져다 자신들의 음악어법으로 변화시키며 도시와 지방 서민들의 유흥문화에 알맞도록 재생산했다. 이로써 통속민요 아리랑이 출현하게 되었다. <아리랑타령>, 곧 <자진아리랑>이 그것이다. 이후 경복궁 중건 시 예능의 소비가 증폭되면서 <자진아리랑>은 여러 다른 통속민요와 함께 유통되었다. 그리고 <자진아리랑>은 그 중에 가장 인기있는 노래가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자진아리랑>은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계층과 지역에 관계없이 가장 호응이 큰, 곧 당대의 대표적인 노래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자진아리랑>의 이같은 인기가 동력이 되어 새로운 통속민요 아리랑이 여럿 생겨나고, 1926년 영화 아리랑이 제작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영화 아리랑은 그 주제가를 <자진아리랑>을 리메이크하여 썼다. 그리고 영화가 크게 성공하자 그 주제가 또한 붐을 일으켜 당시 민족성원 모두의 노래가 되면서 통속민요 아리랑의 하나로 기능할 수 있었다. <본조아리랑>이 그것이다. 또한 <본조아리랑>이 일으킨 붐이 새로운 동력이 되어 1930년대부터는 대중가요 아리랑이 창작되어 이러한 흐름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리랑의 역사전 전개에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노래는 <아라리>, <자진아리랑>, <본조아리랑> 등 세 가지이다. <아라리>는 향토민요 아리랑의 대표적 존재로서 <자진아리랑>의 모태가 되었고, <자진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의 모태가 되면서, 동시에 <본조아리랑>을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본조아리링>은 아리랑의 문화적 힘을 생성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에너지로 기능해 오고 있다.
그런데 <본조아리랑>의 문화적 힘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억압 속에 살아가는 민족성원들이 그들의 정서를 이 노래에 담아내면서 생성되었다. <본조아리랑>이 약자의 언론도구로서 기능하면서 민족성원 공유의 표출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라리>는 전통사회의 계급적 약자인 민중의 노래이며, 그 중 성적 약자이기도 한 여성이 보다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그러므로 <아라리>와 <본조아리랑>이 공동으로 지니고 있는 약자의 언론도구라는 속성은 아리랑의 가장 본원적인 형질에 해당한다.
삶의 어려움이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려움을 말하고, 또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문화적 기능의 수요 또한 늘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어려운 자들을 위한 문화, 그리고 어려운자들의 문화로서 계속 유효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말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아리랑의 부류별 국면
Ⅲ. 아리랑의 문화형질과 전승 맥락
Ⅳ.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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