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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만기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20집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497 - 52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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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청음 김상헌이 안동에 우거하면서의 활동상황과 그의 문학적인 측면을 살펴본 논문이다. 청음이 안동에 머물렀던 기간은 약 7년이다. 체류한 시기는 두 차례로 확인된다. 첫 번째는 1618년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해야 한다는 북인정권의 혼정에 모든 것을 단념하고 어머니 이부인을 모시고 풍산으로 낙향하여 1621년 봄 양주 석실로 돌아가기까지 3년간 체류하였다. 이때 청음은 청원루에 기거하면서 삼구정이나 주변의 경치나 인물들을 탐방한 것으로 확인된다. 두 번째는 병자호란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에 인조가 성하지맹城下之盟을 맺고 남한산성을 나갈 때 그는 병든 몸으로 하직인사를 고하고는 마침내 정축년(1637) 2월 7일 풍산으로 낙향한 것이다. 이듬해 서미동 목석거로 은거해서 1640년 11월 심양으로 압송되기 전까지 3년 9개월간의 생활이다. 문학적 활동은 두 번째 시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두 번째 시기에서 청음은 북벌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형식적으로는 은거생활을 지향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청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시간이었다. 이후 청음은 1640년 12월 심양으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6년간 억류되어 있으면서 북벌에 대한 집념은 더욱더 확고하게 된다. 그리고 심양에서 돌아온 이후부터는 북벌에 대한 구체ㅈ거인 행동실천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런 그의 북벌사상은 효종의 국가통치이념과 맞물려 한층 더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북벌의 꿈을 이루기 전에 청음은 세상을 떠난다. 비록 생전에 꿈을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이런 사상은 문인인 우암 송시열을 통해 최고조의 상황까지 도달하게된다. 이 북벌사상이 연암시대에 와서는 국제성세의 흐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등 북벌 자체가 가지는 한계도 있었지만, 독립국가체제형성을 위한 격분의 아우성이었음을 감안하면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이 북벌北伐 사상이 한 세기 뒤에 와서는 북학北學사상으로 변화된 것이다. 왜냐하면 18세기 연암의 시대에는 청이 국제적으로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청은 더 이상의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선진문물을 본받아야 할 모태가 된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불굴의 항쟁과 최후의 선택
3. 풍산으로의 낙향
4. 북벌에 대한 의지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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