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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두섭 (방산자기박물관)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33집
발행연도
2012.6
수록면
343 - 37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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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지역은 오래전부터 백자의 제작지인 동시에 경기도 광주 분원의 백토 공급지로 유명하다. 양구의 도요지에 관한 가장 이른 기록은 『世宗實錄』「地理志」‘土産’조(1432)에 보인다. 이후 양구지역의 백자에 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의 자료들에서 확인된다. 한편 白土에 관련한 내용들은 다양한 사료에서 백토의 채굴과 품질, 그리고 그에 관한 폐단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등으로 강진 일대의 해안가에서 가마를 운영하던 장인들이 내륙에서 정착하던 중 원료와 땔감, 그리고 수로를 통한 물자의 운송이 용이한 양구지역에서 백자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양구는 고려 말 〈이성계 발원백자〉의 제작을 비롯해 조선시대에는 인순부, 공안부, 예빈시, 장흥고 등의 중앙 관청에서 사용하는 공납자기의 제작지가 된다. 1467년 분원 설치 후에는 일부 양구지역 사기장들이 분원 사기장으로 입역되었으며, 분원에서 사용하는 많은 양의 백토를 채굴하여 공급하는 공급처가 된다. 이때부터 양구의 가마는 지역 수요의 자기제작지로 성격이 바뀌며, 분원으로 공급되는 원료의 채굴지 및 실험번조소 역할을 겸하게 된다.
양구백토는 불순물이 적게 함유된 백운모계 고령토질 도석으로 백색도가 높으며, 1200~1250℃에서 이상적으로 번조된다. 또한 굴취 및 분원 운송에 관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이 사료를 통해 확인된다.
양구지역은 오랜 시간 동안 백자가 제작되었고, 백자 원료의 생산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곳이다. 양구의 려말선초 백자는 고려시대의 백자가 계승되어 조선시대의 백자로 연결되었음을 보여주어 한국 도자사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앞으로 한국 도자사에서 양구 백자와 백토의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확립되기를 기대해본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楊口地域의 白磁
3. 楊口地域의 白土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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