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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명지 (국립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9·280號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35 - 6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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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는 고려청자가 제작기술과 조형에서 뛰어난 양상을 보이며 다양한 비색청자를 생산하던 시기로 중요하다. 그러나 청자와 관련된 절대편년 자료와 사료의 부족으로 인해 정확한 전개 양상을 고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근래 해저에서는 목간 및 죽간이 청자와 동반 출수되어 생산과 유통, 제작시기의 추론이 가능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물의 공반 관계를 분석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태안 대섬 해저 출수 청자를 시작으로 연차적인 발굴 조사가 진행된 태안 마도 해역에서는 고려청자와 함께 그 생산지, 소비주체, 유통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명문자료가 확인되었다. 대섬 해저에서 출수된 2만 3천여 점의 高麗靑磁는 일정 기간 강진에서 생산되어 개경으로 이동하던 도중 침몰한 배에 선적되었던 유물이다.
대섬 청자를 용운리 10호 가마터의 퇴적 층위별 출토 청자와 비교·분석한 결과, 기형·문양·번조방법·굽 형태 등에서 전체적으로 10호-Ⅱ층 <가>유형과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대섬 청자에서는 10호-Ⅱ층 <가>유형에 포함되는 조형적인 특징을 대부분 포함하면서도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기형과 문양을 가진 청자가 다양하게 확인되어 주목된다. 특히 기존에 <나, 다>유형과의 친연성으로 주목받았던 앵무·연판문이 장식된 대접과 접시는 오히려 <가>유형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섬 청자의 번조 받침은 잘 부스러지는 고운 내화토 빚음과 규석이 함께 사용되어 10호-Ⅱ층 <가>유형에서도 규석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대섬 청자와 ‘康津類型’으로 대표되는 대섬 이외 해저 유적 출토 청자와의 비교를 통하여 대섬 청자의 상대편년을 시도하였다. 대섬에서는 ‘강진유형’의 중심 기종과 문양인 압출양각 모란절지문 대접과 접시, 연판문 통형 잔, 팽이형 잔, 보조 문양으로 뇌문이 확인되지 않았다. 게다가 번조 받침은 내화토 빚음이 주를 이루고 규석은 전체 수량의 1% 미만이며 상감청자는 출수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대섬 이외의 해저 유적 청자들에 비해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중국도자와의 관련성을 살펴보면, 대섬 청자의 문양 소재·형태·구성 등에서 중국 宋代 中晩期(11세기 후반~12세기) 越窯 및 耀州窯의 영향이 드러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요주요의 영향이 강하게 간취되어, 마도 1호선 등 대섬 이외 해저 유적 청자에서 定窯의 영향이 감지되는 양상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이 보임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목간의 명문을 분석하여 ‘崔大卿’이 고려왕실 및 불교와 관련된 ‘崔湧(?~1119)’이라는 인물로, 이 명문이 사용될 수 있는 시기는 1144년 이전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최근 판독된 간지 ‘辛亥’는 1131년으로 보았다. 이처럼 대섬 청자를 다각도로 분석한 결과, 그 제작시기는 12세기 2/4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泰安 대섬 海底 出水 高麗靑磁의 조형적 특징
Ⅲ. 泰安 대섬 海底 出水 高麗靑磁의 제작시기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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