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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두섭 (양구백자박물관)
저널정보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인문과학연구 제35집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257 - 29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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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의 백토는 조선시대 분원에서 사용하던 원료의 주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양구지역에서는 1년에 500~550石의 백토를 분원이 해체되는 시기까지 꾸준히 공납하였다. 하지만 백토를 세는 단위인 ‘石’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본 연구는 백토의 1石은 9斗이고, 1斗는 16kg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접근한 논문이다.
양구백토의 채굴은 담당 읍인 양구의 民戶 500호가 역사에 동원되었고, 백토의 正土 선별과 운송은 춘천ㆍ홍천ㆍ인제ㆍ낭천 등에서 담당하였다. 동원된 인력과 운송량은 각 지역별 인구수와 비례되었다.
운송은 육로운송과 수로운송으로 구분되는데, 제 시기에 납입하지 못한 경우와 가뭄이 지속된 경우에 육로로 운송되는 경우가 있고, 그 외에는 일반적으로 수로 운송이 주가 되었다.
육로운송의 경우, 운송에 관계된 읍의 驛馬와 사람이 동원되어 등짐으로 300리 정도의 역로를 3일 정도의 시간으로 분원에 운송된 것으로 보인다.
수로운송은 『經國大典』에 나타나 있는 대ㆍ중ㆍ소선의 규모보다 작은 지토선이나 경강사선을 이용하였다. 배 한척에 25石, 즉 3.6톤 정도를 해당 읍이 할당량만큼 나누어 싣고, 봄ㆍ가을 수량이 풍부한 시기를 선택하여 수운을 시행하였다. 수운은 약 4일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의 하천상황과 적재량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본다면 당시 양구백토를 운송했던 배의 규모도 파악되리라 본다.

목차

국문초록
1. 序論
2. 楊口白土의 生産
3. 楊口白土의 運送過程과 方法
4. 結論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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