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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희국 (장로회신학대학교)
저널정보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계선교연구원 선교와 신학 선교와 신학 제23집
발행연도
2009.2
수록면
181 - 21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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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조선은 봉건 사회 질서가 와해되기 시작하면서 대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봉건 시대의 낡은 제도와 관습을 폐지하려는 사회ㆍ정치적 혁명으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정부의 파병 요청으로 들어온 외국(일본) 군대와 정부의 관군이 동학군을 무력으로 격파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자생적 변혁 운동’ 이 좌초되었다. 이제부터는 외세(일본)와 결탁한 친일 내각이 정치 제도로부터 생활 관습까지 개혁하기 시작했다. ‘관(官) 주도로 추진된 위로부터의 개혁’ 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갑오개혁의 성격이었다. 이 개혁의 과정에서 을미사변, 을미개혁, 을미의병, 아관파천이 일어났다. 수구 세력과 개화파 세력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가운데서, 을미의병은 척사유생들이 주도하여 개혁을 거부하고 옛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는 무력 행동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회 변혁 과정을 몸소 겪으면서 외국 선교사들이 선교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각자의 선교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선교 현장은 매우 다양했다. 서울의 궁궐에 자주 드나들면서 의료 선교 사역을 한 선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황해도 소래 마을에서 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서양의 의식주를 끊어 버린 채 복음을 몸으로 증언한 선교사가 있었다.
사회 변혁의 과정에서 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여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것은 선교사 매켄지의 선교 사역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소래 마을에서 7개월 동안 동학군과 이웃하며 살았다. 처음에는 그가 동학군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몇 차례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겼는데, 차츰차츰 만남의 횟수가 쌓이면서 서로 친해졌다. 동학군에게 열린 마음으로 쉼없이 따뜻한 손을 내민 매켄지는 그들의 친구가 되고자 했다. 동학군 역시 차츰차츰 매켄지의 친구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기독교 신앙과 동학의 신념 체계가 소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동학군 가운데서 하나씩 둘씩 기독교 신앙인이 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소래 마을에 최초의 예배당이 건축되었고, 건축을 위하여 동학의 지도자들이 헌금하였다. 마지막에는 선교사 매켄지는 동학의 접주와 관군의 지휘자가 만나게 하는 중재의 역할도 하였다. 복음의 능력으로 화해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을미개혁의 단발령을 거부하는 백성을 지켜보던 선교사 대다수는 상투를 조선의 전통 분화로 인정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단발령을 선뜻 받아들이는 조선 기독교인에게 오히려 신중하라고 충고했다.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면, 선교사들은 조선의 전통 문회를 존중하는 가운데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본다.

목차

논문 초록
Ⅰ. 들어가는 말
Ⅱ. 1890년대 조선의 사회ㆍ정치적 상황
Ⅲ. 선교사 매켄지가 소래 마을에서 7개월 동안 겪은 동학군
Ⅳ. 을미개혁의 단발령
Ⅴ. 나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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