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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경후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1호
발행연도
2009.11
수록면
125 - 15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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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諫廢釋敎疏」는 조선후기 현종대의 승려 白谷 處能(1617~1680)이 불교탄압을 중지해달라고 호소한 상소문이다. 그동안의 연구성과는 조선후기 불교정책과 그 대응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료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다. 백곡은 우선 고대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불교배척의 이론을 제시하고 그 부당성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간폐석교소」는 불교에 대한 이념적 비판보다는 조선후기 가혹한 불교계의 수탈에 대한 개선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는 우선 중국의 역대군주와 신료, 유학자들이 불교를 비판하였지만, 나라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되지 못한 점을 불교사상이 아닌 경사자집(經史子集)의 내용을 기초로 대응하였다. 아울러 그가 배우고 이해했던 춘추(春秋)의 편찬과 역사인식의 기초는 불교사에 대해 의도적 은폐나 왜곡을 지적하였다. 백곡의 이 실제적 대응론은 확실히 조선전기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추상적이지 않았고, 현실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경사자집의 지식을 기초로 불교비판에 대항한 것은 현실타협적인 것이 아니었고 유학자들의 이해를 쉽게 하고자 배려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수학했던 조선시대 유교사조의 보편적 정서로서 대응한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독단성을 부정한 것이었고, 불교존립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으로 탈유교주의 성향은 결코 아니었다.
한편 백곡은 상소문에서 당시 불교계가 남북한산성 수호를 비롯한 각종 잡역에 동원되어 존립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임을 낱낱이 묘사하였다. 상소문의 성격상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조선조정과 유학자들의 관심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일부러 강조한 것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전란 이후 불교계의 사회적 위상이 격상되었다는 순진한 연구 성과를 힐난하고 있는 것이다. 변한 것은 없고, 극심한 수탈로 승려인구는 현저히 감소될 뿐이었다. 전란 이후 성리학적 가치체계가 해체되어가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불교계의 상황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때문에 백곡의 상소문은 불교계가 안고 있는 혹독한 실상을 고발하고 개선하는데 궁극적 목적이 있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顯宗代 佛敎政策
3. 「諫廢釋敎疏」의 實際的 對應論
4. 佛敎界의 實狀 紹介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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