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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조학회 시조학논총 時調學論叢 第25輯
발행연도
2006.7
수록면
145 - 17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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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시조와 궁중악장의 관련양상을 통시적으로 살펴본 결과다. 조선시대에도 민간음악과 궁중음악의 교섭은 활발했다. 정치적 목적이 전제된 일이긴 하나 순조 대에 대거 시행된 각종 진연ㆍ진작 등 예연의 정재들에 민간음악의 대표 격인 가곡이 도입된 것은 괄목할만한 일이었다. 가곡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랫말은 시조였다. 조선조 후기의 각종 예연에 명시적으로 사용된 시조는 분명 ‘민간음악이 궁중악으로 도입된’ 모범적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려 시대의 각종 정재들이 조선조에도 거의 그대로 수용되었고, 자연스럽게 그것들에 올려 부르던 대부분의 속악가사들도 답습되었다. 그 가운데 〈북전〉은 〈정과정〉을 올려 부르던 진작조로 가창되었다. 그런데 『악학궤범』에 실린 〈북전〉은 3강 8엽의 ‘장가’이나, 『금합자보』나 『양금신보』에 실린 그것들은 시조 형태의 비교적 ‘짧은 노래들’이다. 조선 초기 어느 시점부터는 시조시형이 궁중악의 노랫말로 도입되었음을 암시한다. 특히 〈북전〉은 시조 형태의 노랫말로 교체된 후 조선조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이렇게 〈북전〉은 고려조 이래 최소한 조선조 전기까지는 궁중에서 사용되던 노래였고, 이것이 민간으로 번져 나가 가곡의 레퍼터리 안에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장가 북전〉이 〈단가 북전〉으로 바뀐 것은 사실상 민간의 음악이 궁중 음악에 영향을 준 결과로 보아야 한다.
御前風流의 頌禱之詞였던 〈북전)(〈후정화〉)이 조선 전기에는 曲宴ㆍ觀射ㆍ行幸에는 물론 정전에서 임금과 신하가 만날 때에도 사용되었다. 이런 점은 가곡으로 편입, 조선조 후기까지 지속된 우리말 노래가 원래 궁중악으로도 쓰였다는 사실의 단서라고 할 수 있다. 엄격한 틀을 벗어날 수 없었고, 궁중악과 민간 음악은 확연히 구분된다고 생각해왔던 종래의 상식과 다른 점을 시조시형과 악장의 관계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악장과 시조의 연계, 그 외연과 내포
Ⅲ.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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